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신명기 15장 6-10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다바르)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다바르는 약속하시다, 언약하시다, 선언하시다 등의 의미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이 된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아밭) 줄지라도 너는 꾸지(아밭) 아니하겠고” 아밭은 전당잡히다, 담보물로 주다 등이다. 


 


전당잡힌 것은 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바로 전당물에 대한 희생과도 같은 것이다. 전당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물로서 그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는 것이다. 


 


위의 것을 다시 번역하면 “네가 여러 나라에 전당잡혀 줄지라도 이제너는 전당잡히지 아니하겠고” 다시 말해서 이전에 애굽의 종이 되었지만, 이제는 애굽으로부터 자유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사탄의 종이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마샬)할지라도 너는 통치(마샬)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마샬은 지배하다, 다스리다, 권력을 잡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기를 왕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도 안에 있는 자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왕은 다스리는 자이다. 성도는 그의 심령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여 계신다.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성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를 통하여 영적 제사장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가난은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난한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팔복의 설교에서 가난한 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율법은 모든 인간들이 죄인임을 알려주신다. 그런데,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자가 복이 된다. 복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임을 아는 자이다. 율법이 알려주시는 것은『너희들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에서『가난하다』는 것은 땅이 없어서 먹고 살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지파별로 기업(땅)을 분배해주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생겼다. 여러가지 이유로 땅을 팔기도 하고 해서, 경작할 땅이 없어지는 경우다. 그래서 하나님이 희년제도를 두어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므로 희년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땅이 없는 가난한 자는 땅을 빼앗긴 것이다. 


 


심령은 영을 말한다. 영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이 집을 빼앗겼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영의 집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영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깨닫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깨닫는 자는 하나님께 회개하여, 영의 몸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영의 몸을 입은 자이다. 형제가 영이 가난한 것을 깨닫지 못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몸을 입혀주는 것이 형제의 사랑이 된다.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로 카파츠 야드, 아크 에비욘)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로는 부정문(not), 카파츠는 모아들이다, 닫다, 정지하다 등의 의미. 야드는 손을 통한 힘, 수단, 방향을 가리킨다. 아크는 형제, 친척, 에비욘은 부족한, 궁핍한 등의 의미. 


 


영적으로 갇혀있는 형제에게 손을 펼치라는 것이다. 손을 움켜잡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손을 펴서 무엇인가를 하듯이 영적으로 깨어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가 꾸어주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악한 생각은 일곱번째 해에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이다. 일곱번째에 안식을 주어야 하는데, 주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형제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안식을 주지 않으면, 형제는 안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가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부르짖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수많은 신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지 못하므로 안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죄를 용서해달라고 부르짖는다. 이를 본 형제가 안식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죄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이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므로, 부활생명이 없는 가난한 자가 된 것이다. 


 


“너는 반드시(나탄) 그에게 줄 것이요(나탄), 줄 때에는 아끼는(라아)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나탄은 주다, 부여하다 라는 의미로, 두번 연속 표현되었다. 이는 강조의 의미로 보인다. 라아는 산산조각 내다, 깨뜨리다, 불쾌하게 하다 등의 의미다. 복음을 전할 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주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아끼는 마음은 복음을 마치 세상의 복을 주는 것처럼 말을 하면, 듣는 자는 심령이 산산조각 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잘 모르므로 듣는 자가 그 말을 들으면, 심령에 손상이 오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15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는 일은 사역을 의미하며, 손이 닿은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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