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신명기 136-11절「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세데르) (네페쉬)를 꾀어

세데르는 몰래, 비밀, 덮는 것, 잠복처 라는 의미를 갖으며, 신명기 32 38절에서 피난처라고 한 단어가 바로 세데르이다.「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너희를 위해 피난처(세데르)가 되게 하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에게 비밀스럽게 악을 심는다는 것이다. 네페쉬는 생명이다. 생명을 죽이는 악은 바로 우상숭배이다.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 암은 백성이지만, 여기서는 지파를 의미한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바알, 아세라, 몰렉 등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복신앙으로서 세상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기복신앙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므로서,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인생인 목표인 것 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는 거듭난 새사람이 있지만, 비밀스럽게 숨어있는 옛사람이 뱀처럼 도사린다. 이는 육적 눈을 뜨게 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새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요한1 2 15-17절「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지 못하듯이 하나님 사랑과 세상 사랑은 공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을 살리는 마음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을 죽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사도요한은 말한다. 세상의 특징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너는 그를 따르지(아바) 말며 듣지(샤마) 말며 긍휼히 여기지(츄스) 말며 애석히 여기지(챠말) 말며 덮어 숨기지(카사) 말고”

아바는 호흡을 맞추다, 동의하다. 샤마는 듣다, 지각하다, 간주하다. 츄스는 측은히 여기다, 아끼다. 챠말은 가엽게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카사는 덮다, 숨기다 라는 의미가 있다.

우상숭배와 관하여 말을 하면, 단호하게 대처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상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동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우상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형상을 의미하지만, 마음 속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우상이다.

출애굽기 20 4절『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아래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204절을 다시 번역하면, 너는 너를 위하여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이나 물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과 같이 하늘 안에 형상을 만들지 말며 하늘은 눈으로 보는 하늘(sky)이 아니라, 마음 속의 하늘 나라이다. 하늘 나라를 생각하면서 형상을 떠올리면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마음 속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인간들 각자가 하나님을 자기 생각에 맞게 이미지화 하는 것이다. 농경사회나 가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풍요를 주는 분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상징적으로 소를 하나님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발전해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죽일 때는 돌로 쳐죽이라는 것이다. 우리 옛사람이 죽는 것은 돌로 맞아 죽은 것이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돌로 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다.

신도가 예수와 연합하여 죽은 것은 자신이 돌로 맞아 죽을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은 자라는 것이다. 모난 돌을 쳐서 반석을 만드는데, 이 반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는 것이다.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내세우면, 마음 속의 어떤 형상이든지, 생각을 사로잡아 불에 태울 수 있다.

고린도후서 103-5절「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