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신명기 12장 29-32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카라트) 네가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나카쉬)에 걸리지 말라(샤마르)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카라트는 파괴하다 베어버리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횃불언약을 맺을 때, 동물을 반으로 쪼개놓은 것을 의미한다. 언약이 없는 자는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가나안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이 없는 자들, 우상숭배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만의 신을 믿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숭배한 적이 있었다. 출애굽 당시 열가지 재앙을 보고, 홍해가 갈라지는 경험을 했던 그들이 왜 우상을 만들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의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다만 대언자인 모세의 말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두 돌판을 가지라 올라가 40일이 되도록 오지 않자 그들은 금송아지를만들어 이것이 여호와라고 생각하고 믿은 것이다.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나카쉬)에 걸리지 말라(샤마르) 나카쉬는 잡다, 덫을 놓다. 샤마르는 보호하다, 지키다, 벽을 두르다. 스스로에 대해 올무를 놓지말고, 스스로를 지키라는 것이다.

 

올무는 율법주의 신앙이 대표적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율법주의가 스스로를 올무처럼 옥죄는 것이다. 자기의 의를 이루어 보려고 하는 모든 자들은 스스로의 올무에 걸려있는 것이다. 날마다 계명의 조항을 살펴보면서, 자신이 죄를짓느니 않짓는지 살펴보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애를 쓰는 그런 신앙을 의미한다. 자기가 중심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자기 대신에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신을 믿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 외에 모든 종교는 세상에 축복을 가져다 주는 그런 종교다. 그들의 종교는 사람들의 윤리 도덕을 중시한다. 믿는 사람들은 성인군자가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이와 같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고자 하며, 선한 일을 행하면 축복이 오고, 세상의 복을 빌면 신이 은혜를 베푸는 그런 종교가 되는 것이다. 실제 이와 같은 종교를 탐구해 보면 자신에게 너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떠나가지 않게 지키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언약을 중시하는 신앙이다. 언약은 땅과 백성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심령 속의 천국을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게 해 주겠다는 말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실제로 성경에는 몰렉에게 자식을 제사로 바친 예가 있었다. 열왕기하 23장 10절「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부모가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자식을 죽음의 불에 집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자식을 희생제물로 삼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 목사들이 신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해야 한다며, 고난의 길을 걷도록 잘못 인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마태복음 16장 24-25절「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는 자기와의 전쟁이다. 옛사람을 부인하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매달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샤마르) 행하고(아사)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샤마르는 마음에 지켜서 보호하라는 의미다.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반드시 마음에 지켜, 하나님이 언약하신 내용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생각하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천국에 임한 부활생명을 가진 자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게 마음에 보호하라는 의미다.

 

천국 백성일지라고 여전히 옛사람은 가라지처럼 되살아난다. 그래서 날마다 전쟁처럼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하나님이 기억하고 잊지 말라고 사탄의 가시를 동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언약백성임을 기억하고, 심령 속의 천국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심을 기억하고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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