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신명기 14장 21절「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먹지 말 것이나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파는 것은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여호와의 성민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게노스)이요 왕(바실레이온)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에드노스 하기온)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오스 에이스 페리포이에신)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네가지로 말한다. 택하신 족속, 왕가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했다. 동물을 죽여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므로 제사장이 죄인의 대리자로, 그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죄 용서를 주시는 은혜의 중보자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갔으며, 그 분이 또한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거룩한 백성은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거룩한 백성은 희생제물을 먹고 구별된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 희생제물을 먹으므로, 그것을 먹은 자도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죽은 자가 다름 아닌 신도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저주를 받고 죽었지만, 성민으로서 부활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따라서 스스로 죽은 것을 먹는 것은 육적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며, 영적으로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있어서 이 두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었던 몸이 그대로 살아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죽음은 육적인 죽임이요, 부활은 영적인 부활임을 알 수 있다. 희생제물을 상징하는 새끼염소는 육적인 죽음이며, 염소의 젖은 생명을 살리는 부활생명을 상징한다. 이 둘은 연합될 수 없는 것이다.
신명기 14장 22-29절「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십일조는 전체의 십분의 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처음 난 것을 십분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자신의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다.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땅을 갈아서 수확을 낸 열매를 먹는데,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자신을 드림으로 성도는 부활생명을 먹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וְאָכַלְתָּ֞ לִפְנֵ֣י׀ יְהוָ֣ה אֱלֹהֶ֗יךָ בַּמָּקֹ֣ום אֲשֶׁר־יִבְחַר֮ לְשַׁכֵּ֣ן שְׁמֹ֣ו )
다시 번역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얼굴은 파님(לִפְנֵ֣י׀)이다. 얼굴은 이름과 연결된다. 여호와의 이름은 오늘날 야훼로 일컬어지지만, 육체로 오신 예수가 된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예수라는 곳이다. 오늘날 성도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다면, 그의 심령 속에 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레위기 2장 11절에서『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첫 이삭은 그 해의 모든 땅의 산물을 대표한다. 첫 이삭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소산에 대한 축복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땅 주인이신 하나님께 소작인과 같은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이는 십일조와 같은 개념이다.
레위기 1장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소나 양은 정한 동물로서 되새김질 하고 굽이 갈라진 짐승이다.
레위기 11장 44-45절에서『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구별되는 것이 거룩이라는 것이다. 구별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멸해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구별(거룩)을 강조하신 이유는 모든 인간들은 거룩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이다. 즉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멸해질 때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멸해지는 것인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 라는 존재가 멸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야레)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야레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깜짝 놀라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때는 놀라운 분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놀라운 분이라는 것을 항상 배우게 될 것이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깨닫게 되면 이는 놀라운 사건이 되는 것이다.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거류하는 나그네, 고아 과부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을 상징한다.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서 영적 양식으로 배부르게 만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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