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신명기 15장 16-18절「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그가 여섯 해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히브리 종의 해방과 관련된 내용은 안식년과 관련된 규례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규례를 통해, 히브리 동족으로 종이 된 사람이 육 년간 종으로서 주인을 섬겼다면, 칠 년째 되는 해에는 해방을 시켜주어야 함을 명하셨다. 더욱이 그가 자유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빈손이 아닌 충분한 재물을 줌으로서, 다시는 타인의 종이 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 해 주는 세심한 배려까지도 지시하셨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했다. 지금 유대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그런 말을 하는가 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어서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을 했다. 죄는 마음의 탐욕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죄의 종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 온 에베드(종)라는 것이다. 세상에 온 모든 자가 에베드이며,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으로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예레미야 34장 14-15절에서『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그러면서, 주인에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요구하셨다. 첫 번째는 종에게 자유를 줘서 내보낼 때,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게 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을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어 나가는 종에게도 그대로 전하라는 것이다.
당시 종과 노예의 소유는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부의 상징이자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러한 자신의 귀한 재산이 이 규례에 의해 없어지기 시작 한다면 그것을 결코 마음 편히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영적 메시지를 전해준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바로 과거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종들을 거닐며 대단한 사람들처럼 살고 있지만, 실상 과거에는 그들도,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종노릇하며 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 기억을 한다면 자신을 육 년간 섬긴 종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유를 얻은 종에게 빈손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 충분한 재물을 준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자신들은 애굽의 수많은 보화와 의복, 가축 등을 지니고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억할 때만이, 신앙이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신앙의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할 때만이 나보다 약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멈출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기억할 때만이 진정한 사람 사랑의 섬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칠일째는 자유하라는 것이다.『값 없이(히남) 나가 자유할 것이며』히남은 헨(은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자유하라고 하는데, 율법에 젖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칠일은 안식일이다. 안식년도 마찬가지다. 안식년에는 아무도 파종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여섯해를 섬긴다는 것에서 육은 짐승의 수를 상징한다. 율법 속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피값으로 종을 샀는데, 육일 동안은 여전히 그들이 율법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칠일에는 그 종이 자유함을 입는다. 율법 속에서 빠져 나가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의의 종으로 자유함을 입으라는 것이다. 종에서 아들이 되는 것이다.
칠년이 되어도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 종에 대해서는 종의 귓불을 송곳으로 뚫고 영원히 종으로 함께 살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 주셨다.
“송곳(마르쩨아)을 가져다가 그의 귀(오젠)를 문(데레트)에 대고 뚫으라(나탄)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올람) 네 종이 되리라”
종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육년 동안 주인을 섬겼으므로,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인이 되게 하는데, 계속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되겠다는 것이다.
종에게 자유를 주는 자는 누구인가? 종은 애굽의 노예를 상징하며, 자유를 주는 것은 출애굽을 상징한다. “칠년이 되어도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 종”은 이미 자유인이 된 종이다. 출애굽한 종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유한 종이 스스로 다시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이전의 육년간의 종살이와 다른 종이 된다는 것이다. 육년간은 세상에 대한 종이었다면, 칠년째의 종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여 죽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쩨아는 찌르다 라는 라짜에서 유래된 말로서 송곳을 의미한다. 오젠은 넓음, 청중, 귀 등의 의미. 데레트는 메달리다의 다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진동하다, 문의 판막 등이다. 나탄은 주다, 걸다, 매달다 등의 의미. 올람은 숨겨진, 항상, 영원, 오래된 등.
출애굽기 21장 5-6절에서도 말한다.「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종은 나가야 하는데, 상전도 사랑하고 처자도 사랑하니 나가지 않겠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주인과 종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서 하나님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 게로 갈 것이요』재판장은 성전에 나가 재판하는 것이다. 종이 성전이 되었음을 재판장이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를 문(그리스도)이나 설주(율법 속의 기둥)에 가까이 가도록 하고 구멍을 뚫으라는 것이다.
찌르다 라는 의미는 성전되게 하는 그 말씀으로 성전들이 말씀이 들리게 하기 위해 귀를 뚫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도록 십자가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문에 찌르는 것인데,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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