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신명기 14장 1-2절「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무트)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무트는 죽음, 죽이다, 살해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라무트(לָמֵֽת), 라가 앞에 있으면, ~을 위하여 라는 말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가 아니라 “죽음을 위하여”라는 의미가 된다. 죽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벤다는 것은 할례의식으로서 할례는 육(성기)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상처를 내는 것은 육으로는 죽음을 표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약속의 씨가 있는 표현이다. 약속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라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가 되면, 여호와의 자녀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마 위의 털을 베는 것은 결례의식으로서, 사도행전 21장 23-24절에서 설명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사도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은 바울이 율법을 폐기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야고보와 장로들의 권고에 따라, 바울은 서원한 네명의 유대인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의 비용(제물)을 대신 내주며 성전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유대인 신자들에게 자신이 여전히 율법을 존중하며 질서 있게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방인 선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머리를 미는 정결의식은 서원 기간 동안 부정한 것과 분리되어 하나님께 구별된 기간이 끝났음을 상징한다. 깎은 머리털은 제사장의 성전 제단 불에 태워졌다.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몸을 베는 것과 정결의식을 위해 머리털을 미는 행위는 율법에서 정해진 일이나, 이는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새사람이 된 백성들에게 이미 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죽음을 위한  것 만의 의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죽음이 아니라, 죽음과 생명의 목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적이고 극단적인 장례 풍습을 따르지 말라는 금지 명령으로 생각한다. 죽은 자를 위해 몸에 상처를 내거나 눈썹 사이 털을 밀어 애통함을 표현하는 가나안의 이교도 관습을 금지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지키라는 뜻이다라고 생각한다. 라무트에 대한 번역의 오류로 인함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통해서 구별된 존재임을 나타내도록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할례의 의미도 모른채 형식적 할례를 하고 있었다. 할례는 육적 죽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육적 죽음을 통해서 장래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정작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오늘날도 신도들이 십자가의 죽음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마찬가지로,”죽음을 위하여” 라는 말이 된다. 신도들의 최후의 목적은 부활생명을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뗄 수 없는 연결고리이지만, 부활을 생각하지 않는 십자가의 죽음은 죄만 생각나게 한다. 할례와 정결의식이 오늘날 세례와 같은 의미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의식이다. “나” 라는 존재는 사라지고(정체성의 변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분만이 왕이 되시며, “나” 라는 육적 존재성은 부인되는 것이다. 거울을 쳐다보면서 점점 변하는 육은 사라지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적 존재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영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다. 내 속에 있는 영이 성령과 하나되므로 곧 성령이라는 말씀이다.


 


옛언약은 돌에 새겨졌으나, 새언약은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신명기 4장 9절「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마음에 새겨야 할 새언약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소멸되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성도는 육에 대해서는 죽고, 영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자가 된다.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 성전이 내려오고, 그 성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임재(파루시안)하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에 있으시면, 성부께서 말씀으로 새사람을 창조해 주시고, 성령께서 심령 속에 이름을 새겨주신다. 그 이름이 바로 예수이시다.


 


히브리서 9장 4절에는「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이같이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에 있는 것이다. 맛나는 그리스도를,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성령을, 언약의 돌판은 성부를 상징한다.


 


성도는 언약의 백성이다. 이제 새언약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가 되며,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성전이 내려오며, 그곳에 두 돌판이 있고, 말씀이 있으며, 성령이 돌판에 이름을 새겨주신다.


 


새언약에 참여한 성도는 성례에 참여하는데, 세례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새언약의 두 돌판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성찬은 이것을 기념하여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먹는다. 마태복음 26장 26-29절「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에서 잔에 포도주를 채워서 제자들에게 주셨다. 이것은 죄를 대속하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피는 땅으로 흘러 들어간다. 왜냐하면, 그 속에 인류의 죄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째 마시지 말라고 한다. 죄를 마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잔을 건넬 때 제자들이 받은 잔은 대속을 지나, 하늘의 생명의 음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미리 영생하는 생명의 음료를 마신 것이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천국 혼인잔치에서 마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재림하여 임재하실 때, 함께 하늘에서 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이는 영원한 생명의 음료가 된다.


 


그리고 떡을 떼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창에 찔려 죽은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을 주심으로 제자들이 받은 떡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하여, 제자들은 그 떡을 먹으므로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것이 새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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