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신명기 16장 18-20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각 성에서 열두 지파에 따라, 재판장과 그를 지원할 행정 관리들을 둔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예배와 죄 사함을 담당하는 영적 지도자였고, 재판관(사사)은 하나님이 세우신 군사적·사법적 정의를 실행하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신명기 17장 8-9절에 따르면 어려운 법적 분쟁의 최종 판결은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의 재판관이 함께 처리하여, 제사장적 재판 기능도 존재했다.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예수님은 제사장이면서 재판관 역할을 하신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죄인을 대신해서 어린양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살을 태웠다. 어린양의 죽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재판관은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세상에 재림하셔서 재판관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성경은 세가지를 제시한다. 굽게(나타)하지 말고, 외모(파님)로 하지 말고, 뇌물(쇼하드)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나타는 구부리다, 기울다 라는 의미다. 파님은 얼굴이다. 쇼하드는 뇌물, 선물, 보상을 의미한다.


 


굽게하지 말라는 것은 재판을 왜곡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모로 하지 말라는 것은 피고인의 얼굴을 보고 미리 단언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만 판결하는 것이다. 뇌물을 받지 말라는 것은 재판관이 탐욕의 눈으로 피고인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는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이미 재판을 받은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재판하는 기준은 죄에 대해서 죽었는가 아닌가의 차이이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를 공소를 하지 않는다. 죄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위의 세가지를 기준으로 판결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의의 재판관이시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죄인을 율법으로 판단하고 재판하신다. 율법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율법주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바탕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의 죄는 율법의 조문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마음의 죄에 대해서 죄가 없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외모로 재판을 하지 않는 것은 죄인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신앙인의 삶의 모습으로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굴은 형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는 자기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데도 형상이 있는 것처럼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재판을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생명으로 태어나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가 된다.


 


골로새서 1장 15절「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얻게 된다.


 


교회에서 신도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를 헌신하고 봉사했는데, 거듭난 자가 아니면, 심판당할 수 밖에 없는 자가 된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 물질을 많이 드려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뇌물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질을 드리는 것은 결국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 자신을 드리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어 죽으므로 자신을 드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죄의 몸이 죽은 것이요, 그래서 더 이상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묻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럼에도 날마다 죄가 생각나고, 죄를 속죄받기 위해 날마다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여전히 죄에서 벗어나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와 함께 죽는다는 의미를 모르는 자들이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자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한일서 2장 15절「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세상에 있는 것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마음 속에는 두 마음이 공존한다. 옛사람과 새사람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옛사람과 새사람의 영적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로마서 7장 21-23절「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언약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세상의 유혹에 넘어갈 때가 있다. 하나님은 정신차리라고 사탄에게 가시를 허용한다. 가시에 찔리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사도바울도 세번이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으나,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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