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요한복음 3장 16-18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음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곧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의 히브리어는 여호수아다. 즉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민수기 10장 9절에서『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영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에 속한 아담으로 오셔서 범죄한 영들을 데리고 오시고, 영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영들을 데리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포함한다. 창세기 28장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이 말씀을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예수님이 표현하신다.『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로마서 5장 14절에서 사도바울은 설명한다.『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는『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첫사람 아담 안에서 왔다 라는 말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

창세기 9장 18-23절에서『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에 대해서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당대에 의인이라고 여겨졌던 노아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비록 홍수 이전에는 의인으로 여겨졌지만, 홍수이후 노아가 정신적으로 헤이해졌으므로 이런 일이 생겼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대로 잘 행해야만 한다고 말을 한다.  노아가 방주에서 땅으로 나온 후 세아들을 통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그리고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 창세기 9장 20절에서『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히브리 원본에는『이쉬 노아가 땅(아다마)을 파서 포도원(케렘)을 심었다』라고 되어있다. 성경은 포도원을 말할 때는 이스라엘을 두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사야서 5장 7절에서『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시편 80편 8절에서『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예수님도 비유로 포도원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1장 33절에서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포도원(이스라엘)에는 포도나무가 있다. 포도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세기 12장 7-9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당시 신들을 섬기는 지역은 신들의 영토로 간주되었다. 가나안은 바알의 땅이었다. 그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하셔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사탄의 땅인 이 세상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심겨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심는 자가 된다. 그래서 그 열매의 씨가 계속 심겨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곳에 제단을 쌓게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모레 상수리 나무를 부여잡고 있는 자인가, 아니면 그곳에 제단을 쌓는 자가 되는가? 우리는 세상의 축복을 향하여 뒤를 돌아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심어나가는 자인가 확인해야만 한다. 나의 육신의 눈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믿는 자가 바로 제단을 쌓는 자가 된다. 『나』라는 존재의 항복선언인 것이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벧엘(하나님의 전)과 아이는 서로 대조된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꿈에서 천사들이 사닥다리(인자)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35-38절) 예수님이 하신 일은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하시는 일이었다. 가르치시고 치료하심으로 천국 복음을 그들에게 전파하셨다. 『무리들, 즉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니라』고 하셨다. 주님의 눈에는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보이셨고, 목자없는 양같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이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는 마음이다. 인간들은 천국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먼저 말하므로서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설교하고, 선교하고, 말씀을 전파하지만,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대부분『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라고 전할 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일과 연관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일은 바로 에덴동산의 사건과 관계가 있는 일이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이다. 뱀은 사탄을 상징한다. 사탄은 영적인 존재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생각으로 침투한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일...

두 맹인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마태복음 9장 27-31절) 불쌍한 두 맹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이 메시아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도 그냥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도 이들이 집안까지 들어왔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고 말했다. 그들이 『주여 그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 것이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이『믿음대로 된다』고 하면서 사람의 믿음을 강조한다. 병고침을 받는 믿음이 구원을 얻는 믿음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이것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하지 않고 단순히 병을 고치겠다는 믿음으로 와서 병의 고침을 받고 갈 수 있지만 그것은 구원과 직결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자 정말 눈이 뜨여졌다. 그런데 예수님의 엄히 경고하셨다.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온 땅에 퍼뜨렸다. 먼저 왜 고침 받은 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다. 이사야의 42장 7절의 예언대로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장 23-25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고 말씀하셨다. 임마누엘의 뜻은 히브리어 『임』(함께:with)과『마누』(우리와:us)와 『엘』(하나님:God)이 결합된 단어다.『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본래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의 품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품속에 한 영이 있는데,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그 영이 하나님이시고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장18절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하나님의 품속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까 그 분은 곧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독생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므로 그 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그 존재 방법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정의를 한다면 『영』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말씀하시는 그 형상은 영을 말하는 것이다.『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이어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사람이 바로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기 전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으로서 첫 사람 아담인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9-13절)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세리와 죄인들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정죄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라고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이스라엘에 오면 먼저 자기들에게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불만이 되었다. 자기들은 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 인정받는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누가복음 15장 1-7절에서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이스라엘이다. 이 양들을 두고,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마리(죄인들)를 찾으러 다니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어린양의 비유를 하신 배경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의인들인데, 메시야가 오면 당연히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