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이니라


(82)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이니라[1]

  사도바울이『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라는 말을 하고있다. 그것이 큰 비밀이다. 성경 특히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끄시는 역사를 보게된다. 성경은 세상의 일에 대해서 말하지만, 역시 세상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한복음 9장을 통해서 나면서 부터 소경된 자의 내용을 읽을 수 있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이 사람이 소경된 것이 자기의 죄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 때문입니까』라고 질문하는데, 예수님이『자기의 죄도 아니요, 부모때문도 아닌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소경이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 되었으므로 육체적으로는 엄청난 고통일지라도 하나님의 택하시고 쓰임받으신 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하늘의 생명을 얻게 되므로 본인에게는 정말 큰 영광이다. 예수님이 이 소경의 눈을 뜨게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들에게 말씀하시고 하는 것은『이 소경이 소경이 아니라 너희가 소경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소경이라는 말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소경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경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흑암에 처한 자에게 빛을 주시고,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옥에서 끄내주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이『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해서 오셨다』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흑암에 갇힌 어둠에 처한 자요, 눌린 자요, 포로된 자인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다 볼 줄 아는『소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바리새인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흑암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아닌 밝은 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세상적으로는 옥에 갇히지 않았고, 소경도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하나님 나라 즉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소경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335[2]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설명하시고 있다.『창세로 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려 함이라』고 하셨다.『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그 때로 부터 감추어졌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창세 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한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감추어졌던 비밀을 드러내려고 하신 것이다. 들을 귀가 있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있는 사람에게 그 비밀을 알게하시는 것이다. 감추어져 있는 것은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일에는 관심없고 땅에 있는 일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귀머거리이고 소경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인간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이사야서 558-9[3]에서『하나님의 생각은 인간들의 생각보다 높다』고 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일을 말씀하신는데, 사람들은 땅의 일로 듣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4]에서『사람의 지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창세 전의 비밀에 대해서 보통교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창세 전에 예정하신 것이지 다른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들을 한다. 그것을 선재론[5]이라고 하여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읽는 사람들은 아래의 주석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 선재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창세부터 감추어진 비밀은 창세 전의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밀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도 얼마든지 그리스도를 예언하시고 약속하시고 설명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 사람들도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자체는 비밀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 비밀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것이 비밀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죄의 문제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있기 전에 이미 그들이 범죄할 것을 다 아시고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 비밀이라는 점이다. 창세 전 아직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셔야만 한다는 것을 예정하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하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말을 단순하게 물리적인 상황처럼 인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무고 그를 믿는 사람들은 가지 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이 말을 하는데는 큰 의미가 있다. 큰 비밀이라는 말이다.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을 설명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즉 사도바울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래는『하나였다』라는 것이 비밀이다. 에베소서 530-32절에서『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라고 했다.

한 몸이였기 때문에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하나가 될찌니라 라고 했다. 다시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하나가 되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라는 말이다. 원래는 하나였다가 둘이 되었는데,『다시 하나가 되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본래 한 지체였었는데 한 몸이었던 관계가 끊어져서 세상에 왔으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지체인 교회(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 창세로 부터 감추어진 큰 비밀이라는 것을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그를 믿는 자는 몸의 지체』라는 말이 그렇게 큰 비밀인가?  

창세기 221-24[6]에서 말하는 내용과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530-32절에서 말하는 내용과 상당히 연관이 있는듯 보인다.『아내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라』는 말은『남녀가 결혼해서 하나가 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의 초점은『하나에서 나뉘어졌기 때문에 다시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지체였는데, 둘로 분리되었으므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뉘어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지체였는데, 분리되었으므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지체들(교회)이 그리스도로 부터 떨어져나온 것이므로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와서 그 아내인 교회와 연합하여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원래 아담에게서 한 몸인 것처럼『그리스도와 교회가 한몸이었다』라는 것이 어디에서 한 몸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대개 창세기 2장은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므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에서 오신 분이다. 땅인 에덴동산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담에게서 하와가 만들어진 것[7]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계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모든 지체들이 세상에 내려왔다[8] 는 의미를 담고있다. 에덴동산은 땅의 내용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들도 함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었던 지체들이 에덴동산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에덴동산에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인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에서 오셨으므로, 그 지체들도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서 온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에 계셨지만,『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를 믿는 자가 다 그의 지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래 한 지체는 하나님 나라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부모를 떠난 아들이 아내와 연합하는 일을 말한다. 창세기 221-24절에서도 『아담과 하와가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래 지체들과 하나였다는 것이 이 땅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말씀해주고 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는『원래 하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중에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라는 말은『당연히 그 지체들도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왔다』라는 증거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과 그의 지체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온 것은 순서와 목적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방법은 동일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인간들이 한 지체라는 것은 육체가 한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의 영이 하나』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영과 믿는 자들의 영이 본래 땅인 에덴동산에서 하나였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 나라에서 한 지체였다』는 말이다.『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한 지체였던 영들이 그리스도를 떠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야만 한다는 것을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작정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지체였던 영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온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51-4[9]에서 말하는 것을 통해서『우리의 영이 육체를 입고 세상에 왔다』라는 말을 이해해야 한다. 창세기 27-8[10]에서 말하는『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말한다. 이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사도바울이 말한바 고린도후서 51-4절의 장막을 잘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땅에 있는 육신의 장막집은 육체를 말한다.『장막집이 무너진다』는 말은『사람이 죽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하늘에 있는 처소를 입어야 한다 라고 했다.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누가복음 855[11]에서 처럼 영이 육으로 부터 분리되어 나오게 된다. 예수님이 다시 살리셨으므로『회당장 야이로 딸의 영이 돌아왔다』고 성경에서 말한다. 이 말씀을 고린도후서 5 1-4절에 있는 말씀에 대입시키면,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영이 죽은 육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육으로 부터 나오는 영은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늘의 처소를 덧입지 못한 영은 벌거벗은 영이요, 음부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처소를 입는 것을 사도바울은『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처소를 덧입게 되면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된다. 유디서 16절에서는『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하고있다. 자기 지위는 하나님의 천사라는 처소를 말한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고린도후서 51-4절의 처소와 유다서 16절의 처소는 같은 단어로 작성되었다. 우리가 육신으로 죽어서 나오는 영이 하늘의 처소를 덧입으면 바로 천사의 몸이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 1218-25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바리새인이『사람이 죽고 부활하여 천국에 가면, 남편과 아내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예수님이『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설영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다서 16절에서 말하는 처소를 떠난 천사들은 처소로 부터 영이 나온다. 이를『벌거벗은 영』이라고 표현했다. 이 벌거벗은 영들은 장막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 2 7절에서 말하는 흙인 육체의 장막집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영을 물질세계에서 최초로 육체를 입히시고, 아담이라고 했으며, 모든 인간들을 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오게 한 것이다.

창세기 225절에서『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두 사람의 영은 하나님 처소를 벗었으므로 벌거벗은 상태이지만, 영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때 까지 임시로 육체라는 장막집을 입혀주므로 부끄러워 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영의 입장에서는 벌거벗은 상태이다. 가끔 보통교회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지 아니하므로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 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때문 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영의 벌거벗은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설명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육체 속에 영이 갇히므로 하나님과 단절된 것이다. 이후 모든 육체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든 인간의 영이 벌거벗은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고린도후서 51-4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온 자이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처소를 벗은 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육체 속에 가두어서『하나님 없이 선을 이루어 보라』는 말씀이다. 육체 속에 영이 거한다는 말은 곧『영이 육체에 갇혔다』는 말이며,『육체 안에는 하나님이 없다』라는 말과 같다. 고린도후서 56절에서『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라고 했다.

육체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이를 이상히 여길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들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육체 속의 악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니 악이 함께 유할 수 없다. 육체가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악이 가로 막는 것이다. 그 악은 보통교회에서는 원죄설[12]로 말하지만,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터 사단이 악을 심은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떠난 영의 마음이 육체 속에서 비쳐졌는지 알 수 없으나, 육체 속의 악이 죽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할 수 없게 되어있다. 성경에서 이를 옛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마서 66절에서는『우리 옛사람이 에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2절에서도『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리고』이 말씀은 창세 전에 사단이 다른 천사들에게 하나님 없이도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유혹하여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처소를 벗은 사건을 생각하게 한다. 옛사람은 요한1 215절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표현했다. 옛사람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단의 유혹으로 부터 생겨난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세례를 받을 때『내가 죽고 내가 산다』라는 표현을 한다. 물 속에 들어가는 나와 물밖으로 나오는 나는 분명히 다른데 대부분 같은 나로 생각한다. 물 속에 들어가는『나』는 옛사람이고 이는 물 속에서 죽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불 밖으로 나오는『나』는 새사람으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인 것이다. 옛사람이 서서히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비롯된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나님 나라의 장막집을 덧입을 수 있는 새사람으로 태어난다.





[1] 에베소서530-32: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 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2] 마태복음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3] 이사야서558-9: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4] 고린도전서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5] 성경학자 루이스 뻘콥(번역:신복윤)이 지은 기독교 신학개론의 인간론(1장 제1) 중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각 개인의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는 세가지 이론이 있는데, 선재설과 유전설과 창조설이 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학설이다. 그 중 선재설에 대해서 어떤 사변학자들은 사람의 영혼이 전세에 존재하였다는 점과 그리고 이전에 발생한 이 영혼들이 현재의 영혼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날 이 견해는, 사람이 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학설은 거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두번째는 유전설로서 사람의 영혼은 출생될 때 육체와 함께 번식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에 의하여 자녀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중략) 만일 예수님께서 육체와 영혼을 다같이 죄있는 마리아에게서 받았다고 하면 이 때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무죄성을 변호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세번째는 창조설이다. 창조론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영혼을 직접 창조하셨다는 점 그리고 그 시간을 명확히 결정지을 수 없는 직접적인 창조행위에서 그 기원을 찾고있다. 영혼은 처음에는 순결하게 창조되지만 전인간성이 지니고 있는 죄의 구조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출생 이전에도 죄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 학설은 위의 학설보다 성경과 더욱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략) 그러나 이 학설은 하나님을 적어도 죄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순결한 영혼을 죄의 구조 속에 넣어서 마침내는 그 영혼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설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루이스빨콥,신복윤 옮김, 기독교 신학개론, 성광문화사, 20132, pp.133-135)


[6] 창세기221-24: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히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7] 요한복음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이 세상에서 창조된 것이 없다』 고 말하고 있다.


[8] 왜 이 세상에 내려왔는가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천사들이 하나님을 떠나겠다고 범죄한 것을 두고 말한다. 이는 선재설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이므로 선재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9] 고린도후서51-4: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10] 창세기27-8: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가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11] 누가복음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12] 원죄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모든 인간이 그 원죄로 인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설이다. 그러나 영의 선재설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로 인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각자의 영이 범죄하므로 죄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원죄설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죄를 가지고 있는 몸인데, 예수님이 마리아로 부터 받은 몸이지만, 죄가 없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의 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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