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히브리서 4장 1-2절『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바로 왕의 압제 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괴로워 할 때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그 고기를 먹은 후에 애굽을 나와 홍해바다를 건넜다. 그런데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은 애굽으로 부터 나올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광야에서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3장 16절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광야에서 이들이 복음 전함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광야에서 주님이『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맹세하신다. 애굽에서는 히브리 백성의 죄를 묻지도 않으시고 넘어가셨다. 애굽에서 하나님이 노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러나 광야에서 매일 맛나를 먹으면서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사는 동안에 주님이 노하시고 맹세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오늘날 우리와 같이 복음 전함을 받은 자들이다. 광야에서 믿음을 화합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민수기 13장 30-31절에서『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그들은 불가능하다고 외친 것이다. 그랬더니 14장 1절에서『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들은 백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백성들이 믿음을 화합한 자들은 열 정탐꾼이었다. 그래서 주님이 맹세하신 것이다.
민수기 14장 34-35절에서『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이 글을 읽으면서『이제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믿는 것처럼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집시다 그리고 힘을 냅시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가나안은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세상으로 부터 나와서 충만하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멸망당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멸망당할 것이다.
『우리도 이런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을 가집시다』라고 말한다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 성경에서는『광야에서 아무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선택한 자가 없었다』고 말하며 『이것을 알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그들 모두에게 맹세했다.『그들은 절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풍성하신 그리스도가 제시되어도,『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자들이 아니구나, 우리가 애굽시대 광야에서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죽어야 할 인간들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주님은 우리에게『무엇을 자꾸만 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내가 너희를 위해 할 것』이다. 교회에서  내가 주님을 잘 믿기 위해 열심을 내면 낼 수록 선명해진다. 사람들은 주님은 보좌에 계시고, 믿는 자들은 뭔가를 잘 하는 것이 거룩해지고 충성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님이 뭔가를 많이 하도록 요구한다고 생각한다면, 모두들 율법에 사로 잡혀 있는 자들이다. 은혜는 『우리가 너무 부족한 자들이나,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하겠다』라는 것을 믿으면 그것이 은혜다.『나는 할 수 없는 자이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회개 만이 살 길이다. 회개는『이제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겠나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런 존재가 못 되는 것을 깨닫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자아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렙과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광야에서 밤새도록 울었던 유대인들과 같은 그런 육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하고, 믿음을 가지고 열심을 내고 하는 모든 것이 육으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생명은 결코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육의 마음은 죽어야만 한다. 그것을 깨닫고, 육의 마음이 죽는 것이 회개라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로마서 3장 19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로마교회 교인과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바로 광야에 있는 자들이다. 광야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스스로 그것을 지켜서 의인이 되어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면서『인간은 의인이 될 수 없는 존재 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광야에 있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곧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이다. 죽어야만 하는 옛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맛나를 먹었지만 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옛사람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태어난 자들은 옛사람이고,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은 새사람이다. 옛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죽었고,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 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세상에서 혈육으로 태어난 자들 모두가 옛사람이다. 옛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육체는 언젠가 반드시 죽지만 옛사람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새사람으로 태어난다. 그 새사람은 비록 예전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육체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절『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광야에서 옛사람은 모세와 함께 죽어야만 했다. 새 생명은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같이 새 생명 만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육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육의 마음이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3-4절『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의 마음을 따르면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하지만, 영의 마음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과 같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짐으로, 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육신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영의 마음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의 마음이 죽어야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지만『우리가 이것을 믿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죽어야 되는구나』라고 깨닫고, 죽고 다시 태어나야 주님이 주시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바로 죽고 다시 태어난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기도 응답을 받고, 성령 체험을 하고, 간증할 수 있는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믿음이 오기 전에는 다 율법 아래 매여있는 것이다. 다 죄인이라는 말이다.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는 믿음은 단 하나,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100세때의 이야기이다. 그 때까지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은 기적을 체험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는 것도 보지만 이 믿음은 아브라함을 새롭게 하는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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