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3장 24절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대개 교회를 나와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에게 오자마자『예수를 믿으면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좀 더 성경적으로 말해서『네 모든 죄를 고백하고』라는 말을 넣기도 한다. 그 때 인용되는 구절이 로마서 4장 3절이다.『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서를 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풍랑의 주님을 보고 다 같이『유령이다』하고 소리질렀지만 베드로는 떨리지만『만일 당신이 주라면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게하소서』라고 하고 배를 나와 물 위를 걸었다. 베드로는『이성과 경험을 뛰어 넘는 믿음이 있구나』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이런 믿음을 본받기를 원한다. 복음서에는『믿는 자에게는 당치않는 일이 없으리라』그리고『두려워 말고 믿으라, 믿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하는 귀절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믿음으로 삶의 현장에서 기적과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믿음은 주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4장 18-22절에서『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에 죽은 것과 사라의 태에 죽은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로마서 4장 3절과 18절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되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믿는 믿음과 주님이 주는 믿음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로마서 4장 3절을 믿고 살 때 환경 속에서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지만, 내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고 주님이 역사하심을 경험해도 내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생명 그대로다. 아브라함은 75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25년 뒤 아브라함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100세가 되어서 이삭을 낳게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25년간은 로마서 4장 3절과 같은 믿음이다. 로마서 4장 23-24절에서『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은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 우리 주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를 의로 여기신다는 말이다. 이게 아브라함이 백세 때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해서 말한 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로마서 3장 24절의 말씀이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가『예수믿는다』라고 하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 육신으로는 이런 믿음이 나올 수가 없다. 육적인 것은 죽어야 한다. 성경에서 주님이 요구하는 것은 육적인 믿음이 아니라 육적인 죽음이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이라는 말은 구원이 아니라 구속이다. 즉 속량이라는 말이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받아주셔야만 되는 것이지 우리가 먼저 주님을 받아드릴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먼저 주님을 받아드리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영접기도는 잘못된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받아주시는 조건은 회개다. 그럴 때 우리가 주님의 공로를 받아드릴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얻게된다. 이게 바로 은혜라는 것이다.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 그 공로가 초자연적으로 우리에게 옮겨지는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신 이후에 2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믿어지는 것이다. 이런 초자연적인 은혜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전파되고 있는 수많은 복음을 들어보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교회에 나가자마자 예수를 믿기로 결신하라고 말하고, 예수를 믿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은가? 물론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내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삼년 동안 가르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은『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고 예언하고 능력을 행해도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주의 영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오직 회개만이 있을 뿐이다.
그 회개가 무엇인가? 로마서 3장 19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사람들이 회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이 사도행전에서『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라』고 말하면서 빌립보 간수에게는『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했는가? 빌립보 간수는 바울 앞에 엎드려 두려워 떨며 이르되『선생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라고 말했다. 빌립보 간수가 이렇게 회개의 목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한 것이 이해가 된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떨림이 있을 때 비로소 회개가 이루어진다. 사랑의 주님이라고 늘 생각하면 두려움에 떨면서 회개가 일어나겠는가? 하나님께 두려움이 없는 자는 회개하지 않은채 믿기만 하는 자다. 구원받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서 구원받지 못하게 될지 두려운 것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가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자를 경계해야만 한다.
회개는 내적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그런데, 매일 매일 죄만 용서받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적 변화는 육적인 것이 죽어야만 일어나는 것이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천국이다. 회개한 자는 교회 안이 천국이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가 교회 안에 가득하다면 그 곳은 분란과 탐욕 만이 있는 곳이 될 것이다.『항상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이스마엘은 내 뜻만을 주장한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다.  

우편 강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다. 구원은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나 감옥에서 벌벌 떨고 있는 빌리보 간수나 동일하다. 쉬운 구원은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구원을 바라는 것은 어리섞은 짓이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이는 저희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회개하지 않는 자는 주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구원은 부자가 음부에서 깨달은 것, 회개 만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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