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갈라디아서 3장 22-23절『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여기에서『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에서『약속』을 잘 이해해야 하고, 약속을 주는 자가 누구인가를 잘 이해해야만 구원받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가 주어이지만, 그러나 이 약속은『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사이의 약속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대속하는 그 약속이다. 그 약속을 믿고 회개하여 십자가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가 된다. 나는 그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 뿐이다.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자는 율법 아래 있다. 심판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회개하고 십자가로 들어오라는 말이다.
길을 잃으면 교통 표지판에 민감해진다. 이것처럼 회개하는 자는 율법에 민감해진다. 그런데 교회 많은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은혜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도 법을 어겨 법정에 들어간 사람들은 죄에 민감하지 않고 법에 민감해진다. 양심껏 죄에 민감하다고 하면서 율법에 민감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죄를 사하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 3장 19절의 말씀이다.『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회개하지 않고 성령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개와 믿음이 구분되지만분리되지 않는다. 회개와 동시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임이 계시되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회개를 거치지 않고 성령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율법을 거치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즉『내가 율법 아래 있는 자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고『저 율법적 내가 죽어야만 되는구나』그리고『저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구나』라고 회개하라는 말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한 자다. 그러나 모세도 율법을 거쳐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죽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바울이 로마서 1-32장에서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율법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있다. 오직 은혜와 사랑 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한다. 길을 잃은 자는 표지판에 민감하다. 내가 길 잃은 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표지판이 바로『율법』이라는 말이다. 율법은 길을 잃은 자에게는 좋은 것이다. 그래서『초등교사』라 한다. 율법이 은혜로 인도한다. 율법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율법이 자신에게 의미하는 것을 깨닫고 은혜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당신은 현재 어떤 율법적인 자인가?』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회개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싫어하는 것 처럼, 율법을 말하면 딱딱하게 느껴진다. 귀신을 쫒아내도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귀신을 쫒아내도 그 사람의 주인이 사단이기 때문이다. 회개한 자만 예수님이 사단으로 부터 피값을 주고 회개한 사람을 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귀신을 쫒는 것이 아니라 회개 뿐이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믿음이 오기 전에는 다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라고 했는데, 너희는 다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예수님에게 쏟아 부은 심판만큼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죄인들에게 하시는 심판이었다. 이것이 노아에게 계시한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간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버리지 않고, 죄를 고백하고 용서만 받으려고 한다.
은혜 아래건 은혜 밖이건 변한 것이 없다. 죄를 지으면 죄값을 받아야 한다. 율법은 당한 사람의 입장이다.『당한 자로 부터 죄값을 어떻게 받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세례요한이『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쳤다.『누가 너희를 가르쳐서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회개한 적이 없는 자에게 말하는 것이다. 회개한 자는 길을 잃어 교통 표지판에 민감한 것 처럼, 율법에 민감해진다.『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그로 인해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 선 자만 심판의 두려움을 알게된다. 누구나 하나님께 죄를 짓고 그로 인해서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예수믿고 천국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없는 믿음이다. 플라시보 효과일 것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 속으로 들어가야만 된다. 십자가를 지는 예수와 동일체가 되어야만 구원받는다. 예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믿음이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약속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처럼 약속이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간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은『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이다.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 믿음은『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이 인간들에게 계시되는 것이다.『예수님이 이렇게 믿었구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우리가 믿는 것은 다르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우리가 주체가 된다. 회개하는 자는 예수 속으로 들어가서 예수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동일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내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다 가짜인 것이다. 모든 것이 예수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모든 것이 잘못된 믿음이라는 말이다. 빛이 비추었으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성경은『너희가 어두움 안에 있다』가 아니라 『너희는 전에 어두움이더니』라고 했다. 인간이 어두움이다. 그래서 빛이 비춰도 모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이 예수가 왔는데도 예수를 가리키는 성경을 가지고도 못 알아보는 것이다.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주어가 되는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 바뀌기 전에는 회개한 적이 없는 자이다.『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는 출애굽한 자를 말한다. 시내산에서 한달 반 만에 율법을 받으므로, 40년간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회개시키기 위해 율법 아래 있게 된 것이다. 즉 백성들을 심판 아래 둔 것이다. 하나님은『내가 맹세하노니 너희가 죽을 때까지 가나안 땅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게 심판의 선언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수와 십자가에서 죽고 연합되는 자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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