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 부인하리라


요한복음 13장 36절『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이『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후에는 따라오리라』베드로가 변화될 것을 말씀해 주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바로 베드로가 말한『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와 유사하다.『주는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은『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믿는 믿음이 육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육신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성령을 따르는 자만이 구원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을 낸다고 하지만, 그 열심은 회개가 없다면 육신의 열심이다. 사람들은 그 열심으로 인한 믿음을 구원받는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요한복음 14장 전체에서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14장 22-23절에서『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 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주님은 아무에게나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말을 지키는 자에게만 나타내신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런 주님은 아무에게나 나타내시지 않으신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자다. 그리고 15장에서 주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하시고『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불에 던질 것』이라고 하셨다.
16장 7-8절에서는『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책망하시는 것은 깨닫게 해 주시고 회개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16장 32-33절에서『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주님이 체포되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다.
17장에서는 하나될 것을 기도하셨다. 22절에서『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질 자들인데, 그들을 위하여『하나되게 하실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8장에서 주님이 체포되는 내용이 나온다. 10절에서『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베드로의 육신의 힘이 나오는 것을 본다. 베드로가 산상수훈의 말씀을 배웠고, 삼년 동안 기적을 보았지만 육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18장 25-27절에서『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는『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았다. 그래도 육신으로 부터 나오는 혼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 사람들도『베드로가 검으로 귀를 베는 그런 식으로』믿고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것을『육신』이라고 표현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영은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기적을 보고 배우고 해도, 십자가의 죽음을 따를 믿음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이 오기 전의 상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풍랑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하고, 변화산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그런 상태다.『믿음이 오기 전』이란 내적 변화가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를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그 후에는 나를 따를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그 후』가 바로『내적 변화가 이루어진 후』다. 내적 변화가 이루어 진 자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따를 수 있다는 말씀이다. 내적 변화가 이루어지기 전은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다 도망가는 것이다. 이 생명을『육신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육신으로 비롯된 혼은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영』만이 구원받는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육신적인 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이것이 회개다. 회개하지 않은 것은 성화가 안된 것이 아니라, 구원이 시작 되지도 않은 것이다. 예수를 죽인 자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율법을 맡은 자들이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다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들이 회개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영접 기도하고 성령 체험한다고 해서, 그 안에 육신적 생각이 가득하다면 회개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 종류다. 십자가의 예수를 버리는 자와 예수와 함께 죽는 자들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결국 예수를 버리는 자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율법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와 연합될 수 없다. 예수를 버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율법을 통해서『내가 예수를 버린 자였구나』라고 깨닫는다면『내가 율법 아래에 있는 자였구나』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율법이 초등교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율법을 벗어나 예수와 연합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믿음이 오기 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는다면 예수를 버리는 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자인 것이다. 오직 예수와 십자가에서 연합되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 뿐이다.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도 율법 아래 갇혀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5절에서『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에서『믿음이 온 후』는『회개하여 예수와 십자가에서 연합된 자』를 말하며, 율법으로 부터 벗어난 자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 줄로 생각한다. 그 믿음은 율법이 인도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냥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따르고 있지만『자기가 정말 구원받았는가?』고민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았다면 구원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길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자기 부인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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