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로마서 6장 6-7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세례가 생명을 얻는 것이요,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이다. 세례라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례 안에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일어나야만 하는 일은 6장 3-4절에서 설명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가 예수와 함께 죽어서 장사되는 것이다.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죽은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말한다. 죄에 빠져 있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의롭다 하심을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죄를 짓는 행위와 그 결과 만을 놓고 죄를 회개한다. 죄의 결과를 통해서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죄의 뿌리가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출애굽때 유월절 날 먼저 하는 일은 피를 칠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을 죽이는 것이다. 각을 떠서 난자한다는 뜻이다. 죽이는 자는 양을 가지고 있던 자다. 그 사람의 죄 때문에 그가 아끼는 어린양을 난자해서 죽여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이 그렇게 죄를 미워하는 것이다. 죄를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죄를 고백만 하면 예수의 피로 씻어진다는 말을 믿고 있다. 죄인이 죽어야만 죄가 없어진다. 그래서 죄인의 대리자 어린양을 죽이는 것이다. 그 어린양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그 양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인이 죽었음을 믿는 것이다. 그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간은 자기의 양이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는 악한 존재다. 그게 다윗의 이야기다. 부자가 자기의 양은 못잡는 것이다. 옆집에 사는 가난한 과부의 한 마리 밖에 없는 양을 잡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집의 양도 잡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는 죽지 않고 죄를 없애기 위해 예수의 피만 적용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인간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의 피를 요청하다가 또 죄를 짓는 것이다. 죄인이 죽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죄를 지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처럼 옆집 양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다윗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가를 계시하는 것이다.
아담이 저지런 죄가 다윗 속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 집 양을 못 잡고 옆집 양을 잡는 것을 보고 깨닫는다. 주님은 다윗의 살인죄와 간음죄를 그렇게 보여주었다. 주님은『네 죄를 해결하려고 너희 집 양도 안 잡을 인간이야』라고 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주님은『너희들은 너희 죄만 해결하고자 너희 양도 안 잡을 자들이야』 라고 하실 것이다. 자신은 죽지 않고 죄만 용서받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게하도록 양으로 보내신 것이다. 이게 남의 집 양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다윗 같은 인간들이 자기 집 양을 두고 가난한 옆집 양을 잡아 죽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이 악을 보게하신 것이다. 악을 보고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빛을 보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성경은 깨닫게 해 주신다. 자기의 양을 두고 옆집 가난한 양을 죽이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자기는 죽지 않고 예수의 피만 적용하려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기가 살려고 옆집 양을 죽이는 모습이다. 자기가 살려고 예수를 죽이는 모습이다. 자기 양을 아끼려고 남의 양을 죽이는 다윗과 같은 인간,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예수를 죽인다면 말이 되는가?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지 않고 예수의 피만 적용하려는 자들은 다 남의 양을 죽인 다윗과 같은 자들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만『자신이 정말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던 양을 죽이지 않고, 옆집 가난한 과부의 양을 잡아다가 죽여버리는 그런 인간들이 모든 인류라고 말한다. 왕이 혼인잔치에 아들을 보내면 올 줄 알았는데,『지난번에 종들을 보내더니 이번에 아들을 보냈어, 잘됐다, 저 아들을 죽이면 이 땅에 다 우리 것이 되겠네』라고 하면서 아들을 죽이는 비유가 나온다. 다윗과 같은 이야기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는 순간 탐심이 적용된다.『저자를 죽이면 다 우리 것이 되는구나』라고 말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예수의 피를 적용하는 것이다. 살기 위한 나는 누구인가? 심판받고 죽어야 할 육적 존재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이유다. 예수만 죽고 나는 죽지 않는다면 강도가 되지만, 예수와 함께 죽으면 회개하는 자가 된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처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인게 유월절이다. 자기 양을 잡아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을 상속받기 위해서 남의 양을 잡으려고만 하는 것이다.『인간이 이렇다』라고 하는 것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게시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교회에서는『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이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사영리는 구원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죽은 자만이 죄에서 벗어난다.『의롭다하심을 받는 것』도 죽은 자만이 받는 것이다.『자아가 죽은 자』만이 의롭다하심을 받는다. 세례는 육적인 것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예수를 죽이는 자다. 교회 안에서 찬송하고 온갖 활동을 해도 자아가 예수와 죽지 않는다면 예수를 죽이는 자다. 요한복음 8장 37절에서『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는데, 신을 벗어라고 하셨다.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광야를 가는 중에 아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아서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아내 덕에 목숨을 건진다. 할례는 살의 표피를 칼로 베는 것이다. 할례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약속의 씨를 나타내지만 또 하나는『육신을 죽인다』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와 함께 장사되어야만 한다. 어린양은 성전 마당에서 다 죽어, 피는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 죽은 것은 태워서 영문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서 버린다. 이것이 세례다. 예수와 함께 장사되어야만 한다. 육적인 것을 버려야만 하고, 그 피를 가지고 제사장 되시는 예수께서 성소로 가지고 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래야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레위기의 순서가 세례와 같다. 인간이 각각 회개하여 놋 제단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양을 통하여 감추어진 모든 죄가 계시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게 로마서 1장의 이야기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두 다 불의한 자』라고 했다. 이것을 깨닫 곳이 놋 제단이다. 그 제단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힌 십자가 뿐이다. 그곳에서 인간의 악함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죽어야만 한다. 이게 회개라는 말이다.『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면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주님 제가 바로 당신의 아들을 죽인 자입니다. 제가 어린양을 내 칼로 목을 벤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죽인 어린양과 그 어린양을 죽인 나를 하나가 되게 못박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의 예수와 하나가 되게 하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만『육적인 것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회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