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시편 90편 9-12절『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이 내용은 모세의 기도다.
전 생애에 걸쳐서『주의 노여움과 두려움을 깨달아라』는 말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복음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주의 의를 얻을 때 사랑의 하나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의를 얻기 전에는 노여움의 하나님이시다. 의와 사랑으로 계시되는 곳은 오직 십자가다. 십자가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죄인들을 용서하지 않으시는 의다. 그래서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신다. 모든 인간들의 죄에 대한 대가가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으신데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다. 그래서 회개하고 십자가의 죽음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이미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다. 어린양의 피는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를 보면 넘어가시는 것이다. 애굽의 모든 집에는 장자가 다 죽는 진노가 임했지만 어린양의 피를 집 밖 문설주에 칠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자녀가 악을 행할 때 진노하지 않는 부모가 있겠는가? 부모의 진노를 가라앉게 하는 것은 자녀가 회개하고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자녀가 악을 계속 행하면서 부모에게 악을 행한 일을 고백한다고 부모의 진노가 그치겠는가? 자녀가 말하기를『육체의 죄성 때문에 어떻게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저 악을 행한 것에 대해서 고백할 테니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한다고 부모의 노여움이 그치겠는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부모는 자신의 가슴을 죽을만큼 쾅 때리면서『다시는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부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식은 그저 말하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악한 일을 행한 사실에 대해서 고백만하면 예수님이 대속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또 악을 행하고, 또 악한 일을 행한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 만을 구한다. 하나님을 의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할 수 없는『죄에 대한 진노』를 넘어가게 해 주셨다. 그래서 인간들은 회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 속에 사랑이 있음을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의를 깨달아야만 한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의를 깨닫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모든 것에 대해서 주님은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 심지어 10장 11절에서『참새 두 마리가 팔리는 것 조차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다. 이런 주님을 깨닫지 못한다면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겠는가?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만 주님의 주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자만 회개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회개의 의미조차 모르면서『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천국에 이끌어 가실 것이다. 결코 버리시지 않으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면 천국갑니다』라고 말한다고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천국가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부터 시작된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내가 마땅히 두려워 할 자를 소개하리라』라고 말하면서『몸을 죽인 후에 능히 지옥에 던지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셨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기 전에 120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외쳤지만 7명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아와 가족 8명 만 40일 동안 비가 오는 것을 보았고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방주에서 나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다시는 사람으로 인해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바가 악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이다. 그 만큼 인간은 악한 존재다. 의롭다고 칭함받은 노아의 식구들이 자녀를 낳아도 자녀들이 악을 행할 것이라는 말이다.
출애굽기 1장 16-17절에서『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모세의 구원은 엄마때문이 아니라,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살린 것이다. 잠언에도『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전도서12장 14절에서『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올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회개는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고 도와주셔야만 하지 어떻게 사람이 회개할 수 있는가?』라고 말들을 한다. 마치 성경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귀의 속삭임이다. 두가지의 말씀을 섞어서 왜곡되게 한 말이다. 마귀는 진리를 섞어서 진리를 왜곡시킨다.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수믿기만 하면 천국간다』는 말은 거짓이다. 회개하여 육적인 자아가 죽고 거듭나서, 믿음이 하늘로 부터 와야 천국 갈 수 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천국 가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서 보듯이 장래에 이렇게 될 것이다.『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자신이 결단하여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다 짐승에게 경배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여전히 율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야, 나는 그런 상황이 와도 경배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13장 10절에서『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성도들의 인내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게서만 나온다. 이런 믿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들의 믿음이다. 이 믿음은 교육이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그런 믿음이 아닌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은』회개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계시록 14장 9-10절에서『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하여 하나님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자기를 부인하고 예수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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