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2장 1-3절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은 철학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철학이나 심리학 등 세상의 것을 넣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사도바울은 헬라 문화가 만연한 곳에서 사람의 지혜로 전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도를 전하였다. 십자가의 도는 자기 부인의 길이다. 십자가의 도에는 생명이 역사한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이지만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난 자다. 이삭은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을 말한다. 육체로 난 자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를 말한다.『나는 바울에게라 나는 아볼로에게라 나는 그리스도에게라』라고 파당하는 자마다 육으로 난 자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당 짓는다. 사단이 두려워하는 자는 십자가의 도를 가는 자다. 십자가로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십자가에 연합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만 한다. 그래야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 그래서 그 믿음은 부활의 믿음이다. 부활생명이 죽은 예수를 무덤에서 살리신 것 처럼 회개한 자를 새 생명으로 살리신다는 말이다. 회개하는 자는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 뿐이다. 구원의 시작은『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내가 내 자신을 못박을 수 없다. 십자가에 죽는 것은『내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것이고, 그 희생을 참아내는 것』이다. 자기 부인은 『내가 결단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혈과 육은 결코 십자가를 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다. 오직 하나 내가 죽을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이 나의 죽음을 죽었다는 것을 아는 자, 그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그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자』가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아는 자다.『그의 죽으심과 연합된다』는 것은 나의 결단이 아니라, 그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과 동일한 것을 아는 것이다.
오직 회개하는 자 외에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다. 바울이 2장 3절에서『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라고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자의 마음은 바울처럼 이런 것이다. 시편 90편 11절에서 모세가 말한다.『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잠언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도 말한다.『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이게 회개하는 자의 마음 자세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다.
회개없는 믿음은 결국 자기를 더 믿는다. 그래서 그 믿음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베드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절대 예수님을 버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세번 부인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간질로 고생하는 자를 어떤 사람이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고쳐주었다. 제자들이『우리는 왜 고치지 못합니까』라고 물렀더니『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시면서 20절에서『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겨자씨 만한 믿음을『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는『날마다 이런 믿음을 가지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육정이나 혈통으로는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오직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자만 이런 믿음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오직 이런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땅을 기경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땅이 기경될 때 농부가 씨를 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제자들이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도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한 것과 같은『육적 자기 믿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계집종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결국 잡혀 죽을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는 자,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할 까봐 두려워 하는 자가 회개하지 않은 증거다.『몸은 죽이되 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회개하여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자다.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믿음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고 했다.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간수가 자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도망가지 않은 것을 보고, 사도행전 16장 29-30절에서『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간수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었다. 간수가 회개한 것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회개하며,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 주님이 겨자씨 만한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나무에 달리셨을 때, 우편 강도가 좌편 강도에게 말했다. 누가복음 23장 40-42절에서『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처음에는 우편 강도도 좌편 강도처럼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극한 고통 속에서 예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회개로 인도한다.

우편강도의 죽음이 임박했으므로『회개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우편강도가『우리가 행한 일에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말했다. 이게 회개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주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면 누구든지 구원받는다.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태어난다. 이 생명은 육정으로나 혈통으로 태어나는 생명이 아니라 하늘로 부터 오는 생명이다.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성도다.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며, 교회는 성도들로 하나가 되는 곳이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교회라고 할 수 없다.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 처럼,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하나가 될 때, 참 교회가 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도를 따를 때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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