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부인하는가 안 하는가
요한복음 8장 31-3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진리가 인생을 사단으로부터, 죄로부터 자유케되려면,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만 한다.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믿으면 다 구원받는 줄로 생각한다. 중세 면죄부처럼 거짓말이다. 중세 때는 교황이 사제 외에는 성경을 보지 못하게 했다. 주일 예배 때만 사제를 통하여 설교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의 말을 두려워해서 성경을 보지 못하고 사람의 말을 진리인 줄로 생각하고 따랐던 것이다. 면죄부를 팔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말씀에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이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에게『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말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만 한다. 그래야 진리를 알게된다.『안다(히브리어:야다)』는 말은『경험한다』는 말이다.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 처럼,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뿐이다.
진리와 하나가 되어야만 진리가 삶의 주체가 된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예수인 진리가 주체가 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성경을 남에게 잘 설명해도 진리에 서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 있다. 진리와 하나되게 하는 그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34절에서『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38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마귀)의 욕심을 행한다』고 했다. 이들은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얻으려고 한다. 혼과 영을 동시에 살리고 싶은 자다. 이게 욕심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둘 다 붙잡으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잃게 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성령도 구하고 세상의 복도 구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육체를 따라 사는 자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죄를 지었던 사실을 고백한다고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그 마음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그러면 주님이 죄를 그의 피로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죽는다』는 말은 그 마음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자기 부인』이라고 했다. 사도바울의 말처럼『나는 날마다 죽노라』를 생각해야만 한다.『날마다 죽노라』는 항상 성경 앞에서 자기를 거울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날마다는『매 순간마다』라는 말이다.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씀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여리고 성과 같은 거대하고도 단단한 성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던 것 처럼, 성경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성경 말씀 앞에서『자기 부인』의 상황을 바라 보아야만 한다.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은 스스로『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지만 예수님은『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했다.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마귀에게『났으니』라는 말은 마귀에게『속해있다』는 의미로『마귀의 소유』라는 말이다. 마귀의 소유인 자들이 예수믿는다고 한다. 이게 진짜 불법적 이단들이다. 오늘날 교회에 가면 대부분 이단에 대해서 교회 사람들이 알도록 입구에 게시물을 게재하여 설명해 두고 있다. 그런데『마귀가 아비이면서 예수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이단이라』고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 말씀에 거하지 않는, 많은 교회 사람들이 마귀의 소유이면서『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8장 45절에서『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예수께 나왔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회개하기 전의 믿음은 진리에 서 있지 않는 믿음이다. 회개는 죄에 대해서 용서가 아니라, 죄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어떻게 그런 일이?』라고 말한다면 예수님이『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는 것이 된다.
회개할 때는 이 땅에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천국이 임한다. 세상의 안정을 먼저 얻은 후 예수를 얻겠다고 생각한다면『회개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전에 나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이 사도바울의 말처럼 배설물로 여길 때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온 몸에 암이 퍼져 곧 죽게 되었는데, 암을 고칠 수 있는 약이 개발되었다고 할 때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고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죄로 물든 마음이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악이 죽어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악은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악이 곧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는, 육으로 비롯된『자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에 거하지 않게하는『자기』라는 존재의 아비는 마귀다.
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게 하고, 자기의 의에 빠지게 하며, 성경의말씀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사람에게 칭찬받으려고 하는 외식된 마음을 주입시킨다. 자기의 의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성경도 자기가 좋아하는 귀절 만 붙잡는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친하게 지낸다. 하나님 말씀에 거하지도 않으면서 유명한 설교자 만 좋아한다. 마귀는『너는 예수 믿잖아』라고 속삭인다.『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의 속 마음은 단지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마음, 그리고 죄로부터 벗어나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이다.『예수 믿는다』는 것과『예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의 차이는 예수가 주인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단순히『예수믿는다』는 말은 말씀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여전히『내가 주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마귀가 아비인 것이다. 말씀 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가 주인이 되는 것이며,『나』라는 자기를 포기한다는 말이다.『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말하지만 그래서 좁은 길이다.
원래『자기』라는 존재가 형성되기 전의 영은 하나님과 하나였다. 영은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이 육에 들어가 이 세상의 생명체가 되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가 되어, 하나님과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바로『자기』라는 혼적인 존재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영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 앞에서 회개하여 혼적인 자기를 버려야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혼적인 자기를 옛사람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했다. 로마서 6장 3-6절에서『세례는 옛사람이 물에서 죽고, 하늘로부터 새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구약성경에서 옛사람은 광야에서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 만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가나안은 이 세상이면서 천국을 상징한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야만 한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옛사람이 죽고 하늘로 부터 새생명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새생명은 죄로부터 상관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는『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그러나 죄를 짓는 자는 3장 8절에서『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마귀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오직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 만이 가능한 일이다. 마귀로부터 벗어나는가 못하는가의 문제이다. 자기를 부인하는가 안 하는가의『인간 내적』싸움이다. 회개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떠나는 사람이다. 탐욕으로 부터, 미움과 분노와 시기로 부터, 세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터 떠난 자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생각대로 하는 사람이다. 주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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