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라디아서 3장 26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이 믿음은 예수믿기로 결단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이 믿음은 3장 23-24절의 믿음이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알게된 것이 바로 이삭이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장차 이 땅에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믿음은『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가 되는 것이다. 믿음이 온 자에게는『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한다』율법이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관계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율법을 통해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죽음의 십자가로 들어가라는 말씀이다. 주님이 보시기에 모든 사람이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영이 죽었으므로 어두움 속에 있는 것을 그것을 모른다. 마태복음 4장 6절에서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이 비춰져야만 한다. 5장 8절에서『전에는 어둠이었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주 안에서』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말한다. 이게 거듭난 자다. 거듭난 자는 죄에 대해서 죽고, 율법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대해서도 죽은 자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하늘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교인들로 차 있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오직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곳이다. 거룩히 여김을 받는 곳은 거듭난 자들의 교회다. 그러나 오늘날 실상은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곳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곳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가 있는 곳이다. 교회는 혼의 무덤이며, 무덤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니라 혼이 죽은 그런 곳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이를 깨닫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혼의 무덤이 아니라, 혼의 축제장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씀이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정작 자기부인의 회개를 부르짖는 말씀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서로 좋은 사람들끼리 당을 짓고, 세상 이야기하고, 세상에 반응하는 것을 본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여 거듭난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에만 모든 힘을 다 할 것이다. 이게 구원이다. 구원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저희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하나가 되는 길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만 된다. 이것 만이 구원의 길이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라는 말씀이다. 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를 말씀하신다.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는 있지만,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은 수많은 교회들을 보게된다. 회개하고 자기부인의 길로 들어서야만 구원받게 된다. 회개하는 자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옷 입혀주시는 것이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어서 장사되어야만 한다. 장사되어야만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 장사되어야만 아브라함이 100세때 새생명인 이삭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부인을 통해서 거듭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모른채,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마치 문둥병에 걸린 것처럼, 영적 감각을 잃은 자가 되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먼저 주위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가 된다. 거듭나지 않은 자는 육체가 원하는 썩어질 것 만을 구하는 자인 것이다. 그래서 깨어있어야만 한다. 육이 원하는 것을 버리고 오직 회개하여 거듭난 자가 되어야만 영이 살 수 있다.
장사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장사의 과정을 통과하는 것과 통과하지 않은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나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가 나의 종이 되는가의 차이이다. 왜냐하면 내가 장사를 통하여 완전히 없어져야 만이 그리스도가 나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가 있다. 장사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바로 부활을 받아들일 때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온전히 그의 주인이 될 수가 없다. 아직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나의 보조 역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서『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내가 장사 과정을 통하여 없어져야,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말하는 성령이 내 속에서 그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사되지 않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낼 수 없고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장사되지 않은 사람은『부활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열매를 맺고 생명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는 자기 존재가 드러나게 되며, 장사되지 않은 사람은『자기라는 존재를 성화의 길로 이끌며,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고, 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신앙의 형태가 자기 중심, 자기의 의를 쌓는 신앙으로서 마태복음 7장에 『불법을 행하는 자』이며, 마태복음 25장에『무엇을 하지 않았냐』고 항의하는 염소에 해당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장사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불태워져 없어진 자로서, 열매와 새 생명은 내 것이 아니기에 고린도후서 4장 11절에서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가 되며,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말하는『나는 날마다 죽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이시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주님이 거듭나게 하시고 함께 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지만, 구원의 하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만 함께 하신다. 죄인에게는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신다. 주님은 거룩하시고 구별되어 구약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막으로 나오게 하셨다. 성막에만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주님)과 함께 죽은 자가 성막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만 세례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세례의 핵심은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거듭남이다. 거듭난 자만 죄 사함을 받는다.
그런데 육적 생각이 죽지 않으면서도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회심하지 않은 자는 예수님의 기적을 좋아하고 반응한다. 성령 체험에 반응하고, 천국 체험에 반응한다. 사람의 마음보다 더 부패한 것은 없다. 예레미야가 말했다.『사람의 마음보다 더 부패한 것이 없다는 것을 누가 알겠느냐』하늘의 빛이 비춰져서 그 빛을 보는 자만 깨닫게 된다. 하늘의 빛을 보지 못하면, 다 어둠에 있으므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성경은 모든 자를 죄 아래 가두어 두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하늘의 빛이신 성경이 깨닫게 해 주신다. 성경은 죄 아래, 진노 아래, 심판 아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 만이 성경은 복음이 된다. 이것을 가리는 자가 바로 마귀다. 마귀는 사람의 입을 빌려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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