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갈라디아서 3장 26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이렇게 될 때 29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가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자가 되어야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이 바로『구속』의 의미를 갖는다.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전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고통이 필요하다.『세상을 사랑하는 자기』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은『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를 말한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아서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다. 예수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해서『의롭다』하심을 주신다. 긍휼과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3장 26절에서 말하는 믿음이 바로 그런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이다. 24절에서 이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그래서 믿음이 오면 이제 초등교사인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사형이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은 아브라함이 죽은 것 같이 된100세 때 얻은 믿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율법에 대해서 사형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된다. 계속 사형수로 남아있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구원을 얻는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 믿음의 선물이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믿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구속(속량)이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구원이 된다. 믿음이 와야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이 와야만 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 사탄의 것이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십자가에서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자는 다 사탄의 자식일 뿐이다. 혼이 사형집행을 당했느냐, 아직 당하지 않았느냐의 문제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 혼이 사형 집행을 당해야만 한다. 자기라고 생각하는 혼이 사형집행을 당하는 것은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인데, 과연 할 수 있는가? 자기부인이 얼마나 어려우면,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나를 따를 자가 없다고 하셨을까?
사도바울은 이스라엘 땅에서 율법에는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사형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율법적 생활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율법에 비추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처럼, 언뜻보면 참된 신앙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자기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일 뿐이다. 먼저 죽어야 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형수는 감옥에서는 죽은 자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형수가 감옥에서 규칙을 철저히 잘 지킨다고, 사형이 면제될 수 있는가?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으면, 규칙을 지키게 되어있다.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이다. 사형수와 같은 죄인들에게는 이 세상이 감옥과 같은 곳이다. 그런데, 감옥이 아니라 낙원처럼 생각되므로 사형수라는 생각이 들겠는가? 사형집행이 되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이 낙원처럼 느껴지는 사람이『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인간의 내적 생명이 변하기 전에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내적 생명이 변하는 것은 죽어야만 변할 수 있다. 껍질이 벗겨져서 죽어야만 안에 있는 생명이 살 수 있다. 죄인들은 내적 생명이 죽어있는데, 모두 껍질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마태복음도, 요한복음에도『빛이 비추었다』고 말한다. 빛이 비추어져서 이것을 깨달아야만 하는데,『빛이 비추었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이『너희가 보지 못한다고 하면 죄가 없으려니와, 너희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의 말씀이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고는 당신이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라고 고백했지만, 요한복음 3장 3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소경이라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를 본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3장 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너는 이스라엘 선생이라고 하면서 이것도 모르느냐』라고 꾸짖으셨다. 땅의 일도 안 믿는데, 하늘의 일을 말한다고 믿겠는가? 라는 말씀이다. 그런 후에 예수님이 민수기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3장 14-15절에서『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무슨 뜻인가?『너는 뱀에 물려 독이 퍼져 죽은 자야, 십자가로 들어오면 산다』는 말씀이다.
민수기 21장 8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뱀에 물린 자는 죽어 있는 자라는 말씀이다. 죽어 있는 자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될 때 살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자기가 죽었다』는 말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뱀의 독이 퍼져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내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구원받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자기가 뱀에 물려 독이 퍼져 있는 것을 모르고, 인간이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 영생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옛뱀의 미혹에 걸려든 것이다. 이것은 중세 때의 면죄부보다 더 큰 미혹이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다 사도바울이 거듭나기 전의 사울처럼 율법 아래 매여있다. 오는 믿음은 계시될 믿음 즉 그리스도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야만 오는 믿음이다. 십자가에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예수님은『나 너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이다. 이 말씀이 빛이 되어 생명의 말씀이 되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아니면 이 귀절을 매일 같이 읽고 듣지만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아니면 깨닫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는지?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모든 사람은 죽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인자와 함께 올라간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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