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
갈라디아서 3장 24절『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오늘날 율법에 대해서 거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믿음과 은혜의 말씀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회개의 말씀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구원의 핵심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여 죽는 것이다. 죽은 자 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율법을 통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드릴 때 율법이 초등교사가 된다. 이렇게 될 때『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1-3장에서는 모든 사람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로마서 4장 3절에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라고 했다. 1-3장과 4장과는 반드시 연결되어 있으며,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될 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1-3장을 떼어놓고 4장을 말한다면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 4장 만을 놓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마서 4장은 그 뒤의 18절에서『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이 믿음은 19-22절에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여기에서『죽은 것 같음은』 NIV는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KJV는 body now dead, 헬라어 원문은『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죽은 것』은 모든 사람이 받아드리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되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된, 죽은 것이 없으면 구원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그리스도가 계시되면 구원을 얻는다. 뱀에 물린 자마다 장대에 높이 들린 놋뱀을 바라보듯이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만 한다. 이 믿음을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얻었음을 로마서는 설명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너는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 그런데 25년간 아브라함은 순종하지 못했다. 친척 롯을 데리고 나오며,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 사는 아브람을 나타낸다. 주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자녀를 주신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아브라함도 사라도 모두 안 믿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게 구원이 아니라, 음성을 듣고 믿음은 생겼지만 삼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죽은 것 같이 될 때 구원이 다가온 것이다. 삼일이 지나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세례를 받는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연합이 이루어 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이와 같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면 구원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브라함은 주님이 오래 참고 기다렸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게 된다. 주님이 99세때 아브라함에게『내년에 약속한 자녀를 주리라』고 말씀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될 때 이스마엘은 13세가 되는 나이였다. 하나님은『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겠다』고 하는데, 아브람은『이스마엘이나 살게 하소서』라고 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죽은 영이 살아나야만 한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몸은 죽은 것 같이 되었지만(죽었지만), 죽은 영이 살아난 것이다. 그 동안 아브라함은 육신의 방법대로 믿었기 때문에, 육신적인 생각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100세가 되어 육신이 죽은 것 같이 되어(죽어) 하나님 말씀에 영이 반응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주님은 말씀에 영이 반응하는지 열매로 아신다. 영이 반응하지않는 자는 평생 등불을 켜도『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예언하고 귀신 쫒고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해도, 육체의 혼이 세상에 반응하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탐욕에 반응하는 자가 이런 자다. 그런데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입으로는『내 아버지는 한 분 뿐이시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혼이 세상에 반응하는 자를『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실 것이다.
『택한 자도 미혹하게 하리라』가 이미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온 땅의 수많은 교회가 세상에 반응한다면, 노아 때와 같은 것이다. 바울은 『저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므로 주님이 미혹이 역사하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말했다. 주님으로 부터 버림당한 상태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가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계시를 깨달을 수 없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은 자가 깨닫기를 원치 않으신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저희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회개하지 않고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모두가 이런 상태가 된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먼저 세상의 것을 생각한다. 육신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아브람도 75세부터 25년간은 육신에 근거한 믿음이었다. 육신에 근거한 믿음은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의 아브람의 믿음이 오기 전이다. 아브람이 이스마엘(율법)아래 메인바 된 것이다. 이스마엘이 아브람의 마음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만 다시 태어난다. 거듭나야만 주님이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 아브람이 거듭나는데 25년이 소요되었다. 사도바울은 거듭나는데 삼일 걸렸다. 우편 강도는 십자가에서 손과 발이 못박힌 채로 극한의 고통 속에서 예수의 존재를 단 세시간 동안에 바라보는 기회를 얻게된다. 좌편 강도는 자기 옆에 놋뱀이 달려 있는데도 놋뱀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있는 동안 세시간은 낮이었고, 세시간은 밤이었다. 우편강도는 세시간 동안 놋뱀 대신 예수를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 세시간 동안 회개하고 거듭난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명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열명은 육신이였다. 육신을 따라 사는 자는 육신의 방법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살펴야만 한다. 신앙생활을 영을 따르는지, 혼을 따르는지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을 따르는지 혼을 따르는지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만일 빛과 어두움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마귀에게 붙잡혀 있는 것이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변화를 받아야만 한다. 거듭난 자에게만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자기 부인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