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3장 24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많은 교회 사람들은 앞의 말의 의미를 모른 채, 뒤의 말씀만 생각하면서『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믿는다. 그래서『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면 구원받습니다』라고 말한다. 예수믿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믿으면 구원받지만, 자기 생각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많은 경우,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과 죄인들이 구원받기 위하여 예수믿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예수믿는다』는 말은 완전히 예수님에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이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저들이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거듭난 자의 삶은 자유가 하나도 없는 죄수의 삶을 살다가, 왕궁에 들어가 사는 것과 같은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죄수복을 벗고 왕궁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런데 죄수복을 벗지 않으려고 한다면 계속 죄수의 삶을 살겠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 죄수복이 바로 옛사람이다. 예수님은 자유가 하나도 없는 죄수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셔서,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를 위해 사탄에게 피값을 지불했다. 그런데 옛사람의 죄수복을 벗지 않으려고 한다면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오면 옛사람의 옷을 버리고, 예수님이 주신 새생명의 옷을 입는 변화가 있게 되는데, 옛사람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면 생명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예수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생명의 변화가 없다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예수를 진심으로 믿으므로, 가끔은 구원받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도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이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말은 옛사람이 죽은 자를 향해서 말할 때 제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핵심은 옛사람의 죽음에 달려있다. 이게 회개라는 말씀이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예수를 진심으로 믿으므로, 가끔은 구원받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도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할 때, 거듭난 자는 이 말을 아멘으로 받아드릴 것이다. 그러나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이 말을 들으면 오해할 수 있다.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들에게는『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해야 하는데, 가짜 복음을 전하는 결과가 된다. 누가 회개해야 하는가? 자신의 상태를 살피지 않으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 현재의 정체성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면 잘못된 길을 가게 된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 되는 것이다.『독사의 독이 가득하다』고 했다. 이것은 하늘의 거룩한 빛이 비춰지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매일 맛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 아래서 보호받는 기적의 역사도 그것 자체가 거듭나는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

과거의 놀라운 사건들,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모든 장자의 죽음을 피해 애굽을 나와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출애굽 당시의 히브리 백성을 생각하면서, 그대로 오늘날을 적용하면 될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고, 나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셔서,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게되고, 가끔은 삶 속에서 기적을 경험하고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고 있을지라도,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지 않는다면 가나안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옛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악이기 때문이다. 이 악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의 대상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세상죄는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 사함을 받겠지만, 옛사람인 원죄는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될 때만 사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죽은 자가 죄의 사하심을 받는다』고 로마서 6장 7절은 말한다.

하나님은 히브리 백성들에게 약속된 땅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했지만 백성들은 먼저 가나안 정탐을 원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열두정탐꾼을 먼저 보내도록 허락하셨고, 그들 중 열정탐꾼은 가나안으로부터 돌아와서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그 말을 믿은 히브리 백성들은 다 통곡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 외에는 모두가 광야에서 죽게 만드셨다. 이들을 가리켜 바울은『옛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열정탐꾼은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는 미련한 다섯처녀와 같은 자들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므로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할지라도,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미련한 다섯처녀』처럼, 신랑이 더디오므로 등불이 꺼져가는 것이다.

가나안에는 바로왕보다 더 무서운 아낙자손이 살고 있는 것이다. 바로왕으로부터 히브리 백성을 건져내실 때 어린양의 피로 그들의 세상죄는 간과하셨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낙자손은 멸해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그 아낙자손이 내 속에 있는 원죄와 같은 개념이다. 아낙자손은 죽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우리 속에 있는 그 원죄인 옛사람은 죽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낙자손이 죽어야만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을 차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원죄인 옛사람은 옛뱀(사탄)이 심겨놓은 악의 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세상죄의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죄의 줄기와 열매를 보면서, 그 뿌리를 보지 못한다면 시간이 흐르면 다시 줄기와 열매가 열릴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영성훈련을 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이 악의 뿌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해서 죄악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 뿌리는 제거의 대상이다.

이 뿌리의 대상은 인간의 힘으로는 제거가 불가능하다. 인간은 사탄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대신해서 친히 사탄이 심어놓은 씨의 뿌리를 제거해 주시는 것이다.『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죽음(시체)으로 들어와 장사지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인간들의 원죄(옛사람)도 함께 죽게 하셨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게 세례다. 세례는 장사지내는 것을 표현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옛사람의 죽음은 단지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세례를 통해 선언하고, 열매를 맺는 삶의 현장이 되어야만 한다. 이게 회개라는 말씀이다. 회개는 그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회개의 열매는 죄의 고백을 넘어서, 옛사람의 죽음을 통해서만 맺힐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이 비춰질 때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교회 안에서 거룩한 말씀의 빛이 선포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거듭났거나 거듭나지 않았거나 중간은 없다. 그런데 마치 중간이 있는 것 처럼 말들을 쏟아낸다. 가짜 복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 밖에 있는지 두 가지만 있을 뿐이다. 중간은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옛사람의 옷을 벗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게 아브라함이 100세때 이루어진 일이다. 요셉이 감옥에서 죽은 자 같이 된 때였다. 욥이『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한 때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신 그 은혜가 값없이 적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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