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함으로 얻는 십자가와 연합된 믿음


로마서 10장 9-10절『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새창조다. 새창조의 첫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나는 것을 믿지 못했다.

마가복음 16장 10-13절에서『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이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온갖 기적을 다 행하셨으며, 제자들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렸고, 풍랑을 잠재웠으며, 오병이어의 기적과 변화산에서의 모습을 일부 제자들은 보았다. 그들은『예수님이 죽었다가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라고 하시는 자주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부활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마가복음 16장 14절에서『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누가복음 24장 37-41에는『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구원받는 믿음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오늘날 너무 쉽게 구원을 말하는 것은 가짜일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우리 안에 부활하신 예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지식으로 부활을 이해하고 안다고 그것이 우리의 부활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벽을 뚫고 제자들 앞에 서 있는데도 제자들은 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로 부터 부활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2000년이 지난 오늘날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 속에서는 부활이 있을 수 없으며, 믿을 수도 없다. 새 창조에 속한 거듭난 자에게만 부활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연계되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이 바로 부활인 것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부활이 아닌 것이다. 지식으로만 이해될 뿐이다. 회개하기 전에는 거듭날 수 없는 것이다. 회개는 내가 옛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옷을 벗기를 갈구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장 8-9절에서『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이것이 바울의 믿음이다. 자기를 믿는 자는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것을 믿는 것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히브리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경험을 했지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을 제외하고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 뿐이었다. 열정탐꾼이『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고, 듣는 이들이 모두 통곡했다고 한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율법 판을 받는 무시 무시한 광경을 보았다. 매일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동행했다. 매일 매일이 기적의 연속이었지만, 가나안 땅에서 아낙자손을 보자 그들은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바로왕을 치는 것을 히브리 백성으로 하여금 구경만 하게 했지만, 가나안에서는 함께 싸우시겠다고 했다. 히브리 백성들이 싸움의 주체가 된다.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교회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힘입어 들어왔지만, 영적전쟁의 주체는 거듭난 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싸워주시는 것이다. 그 영적 싸움의 대상은 옛사람이다. 옛사람은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싸우는 것 만이 이기는 길이다.
구원받는 믿음은 주님이 믿는 자 안에서 함께 역사하셔야만 된다. 그래서 주님이 되는 것이다. 여호수아 1장 6절에서『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가나안은 싸워서 이기는 곳이다. 이겨야 할 대상이 있고, 피해야 할 대상이 있다. 사탄은 이겨야 할 대상이지만, 죄는 피해야할 대상이다. 옛사람은 사탄의 자식이다. 그래서 이겨야만 한다.

구원받는 믿음은 새생명으로 부활하는 믿음이다. 새생명으로 부활한 자가 옛사람을 이긴다. 거듭나기 전에는 옛사람은 죽어야 할 대상이지만, 거듭난 이후에는 옛사람은 죽여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하면 부활생명이 역사하지 않는다. 십자가와 연합되는 믿음만 구원받는 믿음이 된다. 이 믿음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생명이 역사하는 믿음이 된다. 이것이 거듭난 믿음이다. 예수님의 부활생명이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그래서 부활이 거듭남이 된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 어려움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가 주인되는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것이다. 욥처럼 자기의 의가 생길 때 환란이 나타나는 것이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다 도망가버렸다. 그래서 부활생명이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으면, 말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부활생명이 역사하지 않게 된다. 오직 하나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만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생명으로 이르게 해 주신다. 회개는 옛사람의 옷을 벗는 것이다.

기적의 경험으로, 말씀으로 은혜받는 믿음은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는 예수님의 제자와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다『버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베드로는『이 자들은 다 버려도 나는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닭 울기 전에 세번 부인하리라』라고 말했다.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는 한, 모든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 이와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말은『예수님이 주』라고 말하지만, 자기가 주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매일 예수를 부인하고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부활의 삶이 되지 못하게 된다. 매일 매일 회개하고 있지만, 옛사람의 옷을 벗는 회개인가, 아니면 죄를고백하는 회개인가?

로마서 7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옛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해주실 것이다. 회개는 내가 주인인 삶을 돌이키는 것이다. 예수가 주인인 삶으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다. 예수가 주인인 삶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성경 귀절을 알고, 은혜받는 삶을 살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가 주인인 삶은 회개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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