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시편 27편 8-9절『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주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모세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다.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탕자처럼 죽은 것 같이 되어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마음이다. 주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얼마나 어두움에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27편 1절에서『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 구원이 된다. 구원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시편 105편 3-4절『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하나님의 능력도 구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가는 이 땅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와 같이 되지는 않고, 능력만을 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천국 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은 오직 하나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 길을 가지 않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부른 노래가 있다. 신명기 32장부터 소개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너희들이 여수룬처럼 살찌면 나를 버릴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 말씀이 솔로몬 때 이루어졌다. 가나안 땅에서 전쟁이 없어졌다. 적들이 솔로몬에게 조공을 바치는 상황이 되었다. 1년간 외부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이 666 금 달란트나 되었다. 계시록에서 말하는 666과 같은 숫자다. 돈이 신이 된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을 놓치고 말았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서 일천 번제와 함께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을 직접 보았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다윗은 광야에서 주님의 얼굴 만을 구했다. 회개하여 주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주님께만 의지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만난 베드로에게 배를 빌려 달라고 했다. 누가복음 5장 3절에서『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가르치신 내용은 네가지 밭의 비유였다. 설교를 마치고 배 주인(시몬 베드로)에게『깊은데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5장 5-6절에서『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전적인 순종에서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5장 8절에서『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예수믿고, 만사 형통되어서, 예수님을 더 잘 믿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가득 채우면 더 잘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버리는 모습을 본다. 솔로몬의 배에 가득채우게 되나 그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아담과 하와도 가득 채워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을 버렸다. 아무리 하나님이 많이 주셔도, 회개없는 인간은 죄성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잃는 재앙으로 연결된다.

2000년 교회사에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고난 당할 때는 주님으로서 즐거워했다. 러시아 교회가 부유해졌을 때 부패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의 출현이다.  작은 섬나라 영국은 전세계에 선교사를 보내고, 성경책을 보내게 되었다.  전세계를 지배하는 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교회는 국가 힘의 도구로 전락한 모습이다. 영국이 한편으로는 성경을 들고, 한편으로는 수많은 나라의  땅을 침략하여 지배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중국의 의화단 사건은 당시 영국, 러시아 등 반외세에 대항하는 사건이었다. 선교사들을 무참하게 죽여버렸다. 회개하지 않으면 재앙으로 돌아온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이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편 24편 5-6절에서『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히브리어 성경에는『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라고 되어,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다. 번역할 때, 하나님이라는 말을 첨가시킨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작은 인쇄체로 되어있다. 다윗은『환난 날에 야곱의 하나님을 부르라』는 것이다. 다윗은 야곱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께 맞아서 환도뼈가 골절되었다. 그런데 야곱은『이곳에서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였다』라고 말한다.

창세기 32장 30-31절에서 야곱은『내가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하나님을 보았는데도 내 생명이 보존되었구나.』라고 말하며,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고, 그는 엉덩이 때문에 절뚝거렸다. 브니엘은 히브리어로『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얼굴(panim)을 대면하여 하나님(el)과 싸웠다는 것이다. 다윗은 자기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데, 지성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주님의 얼굴을 야곱에게서 보았다는 것이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다. 이스라(싸운다)와 엘(하나님)이 결합된 말이다. 하나님과 싸워이겼지만, 하나님은 환도뼈를 치셨다.

오늘날도 우리는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의를 얻기 위해서는 야곱의 환도뼈가 부숴지는 의미를 깨달아야만 한다. 자신이 무엇인가에 붙잡혀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 어둠이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자가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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