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심 만이 구원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이 말은 3장 마지막에서 말하는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로 들어간 사람을 가리킨다.『그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이 가나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감을 말한다.
『너희 중에 이르지 못할 자』라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거듭난 자, 택하심을 받은 자가 아닌 경우를 말한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미련한 처녀를 말한다. 그 이유는 복음을 받았지만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는 자가 믿음을 결부시켜야만 구원받는다. 민수기 14장 8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정탐꾼 중의 한명인 갈렙이 말한 내용이다. 13장 32-33절에서는 열정탐꾼이 말한 내용이다.『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가나안은 그리스도 안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은『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옛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박히기 때문이다.『들어가면 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듭난 자들이다. 새사람으로 부활하기 때문이다.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자 말자 평안의 세상이 된 것이 아니라, 들어가자 말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택함을 받은 사람은 사탄이 되살리려는 죄악(옛사람)을 멸해야만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성령에 의지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것이다.
싸워야 하는데, 싸우기도 전에 인간은 혈육의 죄성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믿음을 화합지 못한 사람들이다. 성령을 의지하여 싸우면 이긴다고 말하는데,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거듭나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민수기 14장 11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자기의 생각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가 된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택하심을 입은 자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 예수님을 믿고 어린양의 피를 칠하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고 믿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이방인처럼 여긴다. 갈렙은 이방인의 대표적인 모습이다.『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하고,『옛사람이 죽는 것』을 회개라고 말하면 당장 이단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회개는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죄 용서를 받는 것을 회개라고 여기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그 옛사람의 원조인 죄성과 싸워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를 죄를 씻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는 물에서 죽는 것을 말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을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은 죽었음을 나타낸다. 홍해바다를 건너서 애굽과 단절한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성경에서 구원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홍해바다를 건넌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원의 기준은 가나안이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므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적이 있지만 그 기준은 가나안이라는 것이다. 아담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그를 에덴동산으로 넣어주셨다.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림으로 그들은 에덴동산으로부터 쫒겨났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의 기준은 에덴동산이 된다. 에덴동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사들의 불칼을 맞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칼을 맞는 자가 없는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 7명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칼을 맞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심지어는 역청으로 모든 곳을 발라서 빛이 없는 그런 곳이다. 노아가『하나님이 물로 심판을 하실 것인데, 회개하고 방주에 들어가면 산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다. 마치 방주 안으로 들어가면 죽을 것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비가 내리기 전에, 많은 사람들은 방주 안을 구경했을지도 모른다. 은혜의 말씀이 주어지지만 믿음과 결부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복음 전함이 믿음과 결부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인간의 육적인 생각으로는 믿기 어려운 것으로 받아드리기 때문이다.
창세기 17장 17-18절에서『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이 때의 아브람은 99세였다. 하나님이 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신다고 말했지만 그는 믿지 못했다. 그런데 100세가 되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믿을 수 없는 약속을 믿게 되었는가?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1년 사이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믿음이 결부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는다. 그러나 창세기 17장과 21장 사이에는 롯과 관련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있었다. 하나님은 두려우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기 전에, 공의의 두려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 약속의 말씀이 믿음과 결부될 것이다.
오늘날 요한계시록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로 생각하거나,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성경 말씀인 것처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시록은 이기는 자가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기려고 하지 않는 자는 악에 져서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자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피를 믿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극히 초등학문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택하심을 입은 자는 이기는 자가 된다. 옛사람이 죽은 자가 택함을 입은 자가 되며, 날마다 옛사람(죄성:악)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된다. 성령을 의지해서 싸워 이기려고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신 히브리 백성들처럼, 그의 안식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 사람들은『내가 어떻게 죄성을 이기겠습니까?』아브람이『내가 어떻게 내년에 나이가 백세인데 자식을 낳을 수 있겠나이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악과 싸워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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