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는 자
요한복음 1장 12-13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며, 아버지를 영접하는 자다.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거의 믿지 않는다. 이 같은 말씀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만 한다. 다시 태어난 자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서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약속이 있는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에서 난 자, 곧 이삭으로 통하여 후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다. 이 생명이 부활과 거듭남이 된다.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25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채, 사라의 몸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13년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의 몸이 죽은 자같이 된 99세가 되어서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은『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을 했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웃었다. 이브라함은 완전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인간적으로 볼 때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까지는 자기 자신의 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99세와 100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셔서『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후에, 소돔과 고모라로 향하셨다. 하나님은『약속과 관계없는 자』들을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지게 하셔서 모든 도시를 태워버렸다. 그러나 소돔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심판에서 피할 수 있도록 하셨다. 물론 롯의 처는 소돔성에 남겨진 자신의 재물들이 걱정이 되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 천사의 말을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를 심판에서 피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아드릴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는 새생명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다. 로마서 6장 8절에서『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그리고 6장 11절에서『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했다.
로마서 4장 3절에서『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이 믿음이 바로 요한복음 1장 12-13절의 믿음과 같다는 말씀이다.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과 같은 믿음이다. 어떻게 해서 99세까지는 믿지 못했는데, 100세가 되어서 의로운 자라고 칭함을 받으면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회개했다. 자신의 육적 능력에 의지한 것에 대한 회개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못한 패역함을 발견했다. 비로소 그는 심판자이신 두려우신 하나님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육적으로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황까지 기다리셨다. 하나님은 가다리셨으나, 아브라함이 99세에 하나님 말씀에 웃었지만, 100세가 되어서, 그 웃음이 타락한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켰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었다. 로마서 4장 19-22절에서『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성경이『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해도, 듣는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만일 웃는다면, 아브람의 상황과 같은 것이다. 우리도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육적 경험과 지식에 의지해서 판단한다면, 교회생활을 오래하고, 기적을 경험하고, 환상을 보아도 썩어질 수 밖에 없는 육의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로마서 4장 23-24절에서『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이 믿음은 육적인 믿음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육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회개하는 자가 된다.
육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바로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지만, 하나님께는 의롭다 칭함을 받는 자다. 비록 육신을 가지고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예수와 연합된 자는 육이 죽은 자라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육이 죽고, 신령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라는 것이다. 로마서 8장 4-6절에서『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의 생각은 영의 몸을 입지 않으면 생길 수 없다. 영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6-38절에서『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씨 안에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이 흙을 뚫고 올라오기 위해서는 씨의 껍질이 죽어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0-44절에서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육의 몸으로 심는 것은 육적 죽음을 나타낸다. 육의 몸이 죽어야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육의 몸이 죽는 것은 자살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말한다. 세례의식이다. 세례는 회개하여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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