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구하는 기도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장막은 하나님과 만나는 언약의 장소를 말한다. 율법 시대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만난 곳이 장막이었다. 하나님이 손으로 지은 집은 바로 육체를 말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셔서 인간을 만드셨다. 그리고 아담을 에덴동산에 넣어주셔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했다. 아담의 육체 속에 있는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육체는 오염되고, 영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모든 인간들의 장막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가 있다. 이 처소가 바로 영의 몸이다. 영의 몸을 입지 않으면 벗은 자들이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들이 벗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들이 된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덧입는 것을 말한다. 『덧입는다』는 말은 옷을 하나 더 입는다는 말이다. 육의 몸에 영의 몸을 입는다는 의미다. 거듭나는 사람은 두가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이다. 육의 몸이 죽어야 생명으로 이어진다. 생명은 영의 몸이다. 로마서(6장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죽을 것(육의 몸)이 생명(영의 몸)이 삼켜지는 것이다. 그래서 죽을 것은 사라지고, 영의 몸인 생명 만 남게된다.
고린도후서 5장 5-6절에서『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성령께서 이를 보증하신다고 말씀했다. 거듭난 자도 두개의 몸이 있지만, 우리의 의식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주님과 따로 거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항상 영의 몸으로는 함께 있음을 믿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된 자는 영의 몸으로는 주님과 함께, 육의 몸으로는 주님과 따로 거하게 된다. 마음에서 나타나는 의식은 주와 함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와 따로 거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할 일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일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8-9절에서『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어야만 한다. 나도 기쁘고 주님도 기쁜 삶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기쁜 삶이 되는 것이다. 영의 몸에 있든지, 육의 몸에 있든지, 항상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힘쓰라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5장 15-17절에서『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사람들이 새피조물을 정신적 작용으로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피조물은 이전의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거듭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육의 눈으로 생각하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된다. 육신에 따라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철학적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형이상학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삶일 것이다. 그러나 노력과 결심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믿을 때, 성령이 인도하실 것이다.
교회사람들은 거듭난 삶을 살아도, 육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영의 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육의 몸에 거할 때는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영의 몸에 거할 때는 사탄이 접근하지 못하지만, 의식이 육의 몸에 있을 때는 영적 무장을 하지 않으면 넘어질 것이다. 사탄은 생각 속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인간들이 생각하는 꿈과 야망을 이용하여 넘어뜨리려고 한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하와가 갖고 있던 야망을 이용했다.『나도 하나님처럼 될 수 없을까』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탄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 속으로 침투한다.
고린도후서 10장 4-6절에서『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부인하지 않으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게된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다. 이 땅에 사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온전히 복종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이 싸움은 마음의 싸움이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다.
에베소서 6장 12-14절에서『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세상에서 잘되는 기복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기도일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던 아니던 복을 빌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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