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요한복음 1장 12-13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자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나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부를 수 있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너는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자다. 예수와 함께 죽는 자는 십자가에서 당한 예수님의 고통이 회개하는 자가 느끼는 고통과 같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상관이 있는 자는 혈통과 육이 아니라 영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예수와 상관이 없다. 그래서 영의 몸을 가진 자는 성령을 따라 산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다. 육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율법에 의해 적용되지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법이 적용된다. 율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율법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성령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자유함을 입는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율법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그들은 회개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와 함께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거듭났다고 믿는다. 거짓된 복음에서 벗어나야만 구원받는다. 거짓된 복음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속이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 진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예수를 생각하면서 돌이키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 그 핍박의 불시험 속에서 통과하는 자가 예수의 가족인 것이다. 불시험 속에서 지푸라기들은 다 불에 타버린다. 가짜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타버릴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보석으로 거듭나게 된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다른 제자들은 더 목격했고, 이를 증언하는데도 도마는 믿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도마는 예수의 옆구리에 창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도마는 자신의 육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람들이 부활을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거듭난 자다. 왜냐하면 거듭난 자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도마와 같은 그런 믿음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돈과 명예와 권력인가, 아니면 예수인가? 예수님은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육은 언젠가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영의 몸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십자가는 육의 몸을 부인하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종교나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만, 십자가가 아니면 불에 타버리는 믿음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일 뿐이다. 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이『인간의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씀했다. 인간 속에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그 탐욕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 탐욕이 죽고, 거짓없는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행을 행하고, 영성 수련을 하고, 노력하지만, 스스로 탐욕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오면, 물질 앞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 당장 육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가장 많이 기적을 행한 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회개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문둥병자가 치료가 되고, 죽었던 자가 일어나고,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보았지만, 육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오면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이게 회개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보면서 그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기적에 생각을 두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어떤 상황에서 자기를 더 믿는다. 도마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을 때, 예수님이 도마보다 더 신뢰한 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데도 도마는 믿지 않았다. 자기의 판단이 더 중요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자기의 생각이 더 중요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옛사람들이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이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2절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예수가 부활했음을 믿는 자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믿는 자가 예수를 영접하게 된다. 믿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자다.
요한복음 16장 16절에서『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앞의 말은 예수님이 조금 있으면,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말이다. 그런데『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이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본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믿는 자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6장 23절에서『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예수님이 믿는 자 안에 있을 때,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주신다고 말했다. 교회 사람들은 주문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예수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가? 예수의 이름이 지성소에 있는 것이다. 지성소에는 이 세상의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16장 24절에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자는 다시 태어난 자 뿐이다.『영의 몸』을 가지지 않은 자는『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려고 해도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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