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고
요한1서 1장 5-10절『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있다.『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그런데, 창세기 1장 4절에서『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라고 했다. 빛은 어둠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가면 어둠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사귐이라는 말은『코이노니아』라는 말인데,『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에서『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참여라는 말이 사귐과 같은 단어다. 사귐은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어둠에 있으면 안되며, 그리스도의 피에, 몸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야만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된다. 즉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지 않은 자는 모두가 어둠에 있는 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도 빛이 되기 때문이다.『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즉 어둠에 행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도 않으므로,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죄의 사하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와 함께 육의 몸(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생명으로 나가게 된다. 에베소서 5장 8절에서『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영접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으심을 믿고, 예수의 죽음과 나의 죽음이 연합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 어린양의 죽음이 죄인과 연합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어린양이 죄인을 대신하여 실제 죽었지만, 죄인이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4절에서는『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빛은 생명이라고 했다. 생명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도『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여기서『안다』는 것은 부부가 연합되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그래서 새 생명 가운데 있는 자는 골로새서 3장 3절과 같이 된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이 상태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희들도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도였다. 이것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 세례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은 자를 나타내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그리고 세례의 결과가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된다. 세례가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세례의 결과(예수와 함께 죽은 자)로서 하나님이 새생명 가운데 거듭나게 해 주신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되지 않으면, 예수와 함께 부활도 없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죽은 자가 되면, 하나님이 죄를 묻지 않으신다. 이 땅에서도 범죄자가 죽으면, 공소를 취하한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하나님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법으로 적용시키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육의 몸(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현실적으로 육체가 존재한다. 그래서 사탄이 죄를 짓도록 공격한다. 가끔 넘어지기도 한다. 이때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거듭난 사람은 악과 싸워 이겨야 한다. 로마서 8장 12-13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예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세상죄에 대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가지고 하나님 나라로 대제사장으로서 나아가셨다. 그러므로 계속 죄를 사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죄악에 대해서 싸워이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듭났다고 말을 하면서도 죄짓고, 회개하여 죄용서 받으려고 하고, 또 죄를 짓고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치 않으면, 거듭난 자가 아닌 자일 것이다. 싸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날마다 죽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거듭난 자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이지, 죄의 문제를 가지고 계속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라고 벌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그래서 죄를 고민하고 죄사함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아닌 것이다. 거듭난 자는 사탄이 육의 몸을 살리려 하기 때문에 죄악과 싸워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거듭난 자는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다. 영의 몸은 죄를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영의 몸과 육의 몸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마치 컴퓨터에서 본체는 육체, 하드디스크는 육체 안의 몸이다.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남은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것과 같은 원리가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사도바울이 부활과 관련하여 육의 몸과 영의 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예수님도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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