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의 의미


창세기 5장 21-24절『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영이 물질 속에 갇힌 자들이다. 그러나 갇혀있던 영이 깨어나는 자들도 있으며, 죽어있는 자들도 있다. 영이 깨어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며, 영이 죽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에 계시고, 인간들은 물질 속에 존재한다. 물질세계에 있는 존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물질세계에 있는 인간이 하나님 나라로 가던지, 아니면 하나님이 물질세계로 오시던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이면서 추상적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안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율법을 지키면서 의를 이루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를 스스로 이루어보려고 하다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님이 내 안에 안계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스스로 의인이 된 것처럼 생각했다.

 로마서 3장 19-20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죄를 깨닫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물을 통해서 속죄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시다. 곧 하나님이『하나님을 떠났음을 깨닫는 자』에게 찾아 오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 속에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찾아가지 않으신다. 

요한복음 17장 23-24절에서『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하나님이 찾아오시면,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가 되는 것 같이 된다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에게 이렇게 물질세계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열심히 지켜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려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이라고 말한다면 동행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약에서 성전은『하나님이 계신다』는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에는 예수님도 없으며, 하나님도 없다. 다만 상징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성전은 참성전이신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누구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가 성전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자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된다. 신약시대에,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런데도 율법 속에 있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하는 자들이 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율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에녹에게 나타나심은 마치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에녹과 300년동안 동행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에녹의 나이 65세에 므두셀라를 자식으로 주셨다. 성경에는 숫자에 의미를 담아두고 있다. 6은 세상을 상징한다. 60이라는 말은 창조된 세상이 10(완전)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아들(므두셀라)이 생명이 끝나는 그 날, 하나님이 은혜(5)를 주신다는 것이다. 은혜는 죽음 뒤에 생명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의 은혜가 있음을 의미한다. 심판은 그 뒤에 은혜를 감추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심판은 멸망이고, 형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 생명의 은혜가 감추어져 있다. 육적인 죽음(옛사람의 죽음) 뒤에는 죄로부터 벗어나는 거듭남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므두셀라의 죽음은 노아의 홍수를 알려준다. 

에녹은 히브리어로『하마크』라고 하는데,『봉헌하다,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에녹에게 아들 므두셀라를 주시므로 세상이 홍수로 멸절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므두셀라는『보내는 자』라는 의미가 있는데, 생명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새롭게 시작할 은혜를 주신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즉 물에서 육신을 벗는 은혜를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그 물이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옛사람의 죽음은 새롭게 시작하는 은혜가 되는 것이다. 세례에 대해서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에녹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아들(므두셀라)을 통해서,『네 아들이 이 땅에서 생명이 다하는 그 날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는것이다. 에녹은 이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의 복음이 되기 때문이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여 이 말을 전했을 것이다. 오늘날도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는 성령이 증거하신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전도는 아무런 생명이 되지 못한다.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것은 심판과 생명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옛사람이 죽어야만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해야만 한다. 에녹은 곧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므로, 모든 사람들에게『너희들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라는 것과 하나님께 돌이킬 것』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300년간 복음을 전해준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자기부인을 통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에 관하여 300년간의 전했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던 자들은 모두 복음을 외면하고 말았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심판하셨다. 오늘날도 구원은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구원받는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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