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와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6장 1-6절『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노아의 홍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 노아의 방주에는 노아와 그의 일곱명의 식구들, 그리고 동물들이 들어갔다. 홍수는 죄, 죽음, 심판을 상징한다. 이사야서 57장 20절에서『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시편 32편 6절에서는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미가서 7장 19절에서『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홍수는 하나님의 저주다. 그런데, 그 물 위에 방주가 있는 것이다. 방주(Ark)는 직육면체 상자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영어로 Ark라고 표현된 곳이 성경에는 두 곳이 더 있다. 모세의 갈대상자와 구약시대 언약궤다. 방주에는 역청을 발랐다. 방주가 사람(모세)으로 등장한다. 홍해바다는 범죄로 인하여 물에 다 빠져 죽어야 하는 저주와 심판의 바다를 상징한다. 베드로전서 3장20- 21절에서『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 홍해의 갈라진 바닷물 속을 걷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모세에 속하여 선택을 받은 백성이 된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성경은 모세를 신명기 18장 15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요한복음 6장 14절에서『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마가복음 6장 45-52절에서『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은 오병이어의 기적 다음에 등장한다.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물위를 걷는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오병이어는 갈릴리(디베리야) 바다 건너편(광야)에서 일어난 기적이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맛나를 먹은 것을 연상케한다. 또한 광야에서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남은 것을 광주리에 담았다. 즉 죽어야 할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이 주어져서 그 떡을 먹는 자들이 생명으로 살아나게 되는 십자가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33-35절에서『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6장 51절에서『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땅에서의 떡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세상의 떡을 위해 예수를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다. 6장 2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떠나갔다. 이 이야기가 예수님의 물위를 걸었던 사건과 같은 맥락이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인하여 산으로 피하셨다. 기복신앙을 바라고 있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피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산 위에서 주님이 그들을 지켜보셨다. 그들이 광야에서 바다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풍랑이 일어났다. 제자들은 풍랑을 이겨보려고 노를 더 열심히 저었지만 풍랑은 더 거세졌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바다에 나타나셨다. 베드로가 주이시면 물에 걷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고, 예수님이 베드로를 구해주신다. 그래서 풍랑이 가라앉고 그들이 가려던 가나안에 도착한 것이다. 바다는 율법의 바다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율법 위에 걷고 계시고, 배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아무리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해주신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출애굽 사건이다. 구원은 노력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과 연합되는 믿음이 구원의 길인 것이다. 

물은 율법으로서 죄인들이 죽어야 할 저주를 의미한다. 오병이어의 사건도 광야에서 죽어야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주님께서 살리시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풍랑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그들을 살리셨다. 시편77편 16절에서『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77편 19절에서『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욥기 9장 8절에서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하나님이 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하고 홍수로 심판하셨는가? 노아와 가족 7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 자기의 의를 쌓고, 노력하고, 자기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한 것이다. 성경은 이를 우상숭배라고 한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이 우상숭배인 것이다. 심판이 바다이며, 바다는 곧 율법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율법의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자기가 스스로 의를 이루려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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