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놀라신 믿음


(마태복음 8장 10-13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왔다. 백부장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주여 저의 하인이 병들고 괴로워하오니 고쳐달라』고 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했는데,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씀했다. 이방인 백부장의 무엇을 보고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는 것인가?  백부장의 믿음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믿음이 이방인 백부장에게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마태복음에서는 백부장이 친히 온 것으로 되어있지만, 누가복음 7장1-10절에서는 자신이 감히 예수님께 나아갈 자격도 없는 것으로 말한다. 그래서 유대인 장로들을 대신 보낸 것이다. 유대인 장로들은 백부장이 이방인이지만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유대인 회당도 지어준 사람이기에 이 사람의 청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의 집으로 가자고 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또 사람을 보낸다. 자신이 직접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는 이유는『제가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어서 장로들을 보낸 것이라고 하면서 거저 말씀만 하시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그 종이 이미 나았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과 백부장이 직접 대면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은 직접 대면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비중을 두는데, 누가복음에서 이방인 백부장에 비중을 둔다. 백부장의 어떤 선행도 언급이 없이 예수님을 만나서 청하고 고침을 받는 장면은 유대인들에게 더 충격적인 내용이다. 백부장은 이방인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고 이방인에게서 이런 믿음을 보므로 놀랍게 여기셨다. 이스라엘보다 먼저 이방인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이 말하기를 백부장은 겸손하고, 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완전히 의지하므로 이런 놀라운 믿음의 결과가 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이『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므로 유대인들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말로 받아드렸다. 그러나 죄인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이 죄인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이방인이 아니라, 죄인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방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분배해주시면서 땅을 팔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그네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나그네가 바로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라는 의미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영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영의 고향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방인이라는 표면적인 내용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이 아닌 모든 민족을 가리키나, 이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들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백부장이 예수님의 말 한마디면 하인이 낳을 것이라고 믿는 믿음에서 예수님은 놀랍게 여기셨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많은 교회에서는『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받는다』라고 말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제 각각 해석하기도 한다. 마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버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을 마치 마음의 변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거듭남은 옛것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부활과 같은 개념이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지만, 거듭난 자는 예수님 안에 있는 부활의 열매인 것이다. 오늘날 회개하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죄를 반성하고 죄에 대해서 회개한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죄에 대해서 죽지 않고, 날마다 죄를 범하고, 또 회개하고 하는 것이다.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단번에 이루신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증명하는 것이 언약식이다.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약속하셨다. 창세기 26장 4절에서『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약속하셨다. 창세기 28장 13절에서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을 애굽에 400년간 종살이를 시킨 후에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애굽은 세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왔다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것을 깨달아 하나님께 회개하여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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