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장 1-14절)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없음)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며,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악이 가득한 자이며, 자기도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3장 9-18절에서 표현한다.『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항상 덤덤하고 자기 원하는 것을 쉽게 기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회개할 수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회개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가출한 자에게 아버지가『이제 그 마음을 죽이고 돌아오라』고 하실 것이다. 그 마음이 죽어야만 한다. 이게 회개다. 그런데 그 마음이 죽지 않고 아버지께 돌아가기만 하면, 다 받아주실 것으로 오해한다.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아버지로만 생각한다. 죄를 징계하는 아버지의 두려운 눈빛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죽지 않으면 아버지는 받아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 마음이 죽을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참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의 심판은 주님의 집에서 부터 시작될 것이다. 주님의 집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믿은 것처럼, 오늘날도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하나님을 찾는 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자기부인의 십자가의 길이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좁은 길로 가라고』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좁은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넓고 평탄한 길로 가면서도 예수믿으면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개의 자기부인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믿는다고 고백해도 예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하셨다. 마태복음에는『그 문이 좁고 협착해서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찾는 자도 적다』고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만 이 문을 찾게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좁고 어렵기 때문에 이 문을 싫어한다.
문이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평생 예배한다고 반드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같이 생활한 제자들도 되지 않았다. 구원이 쉽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일 것이다. 구원이 쉬워보이는 길은 멸망 길일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는『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이 원하셔도, 사람들 스스로 회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이 문장 중『어디에서』라는 말은 거듭난 자에게 해당하는 단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이 모르는 사람이 된다. 거듭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노력과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형질이 바뀌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얻은 것처럼 없던 생명이 생겨야만 되는 것이다. 그 해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뀐다. 그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라는 말이다.『거듭나면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남을 살리지 못하는 생명은 자기도 구원받는 생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씨앗을 뿌려서 생명으로 꽃피우지 못하면 죽어있는 것이다. 남을 살리지 못하는 생명은 죽어있는 생명과 같다. 비록『남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더라도 나는 구원받는다』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섞은 생각일 뿐이다.
마태복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택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에게『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좇지 않으면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 전에는『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지 않으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시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님을 시인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삼년이 지났는데, 예수님이『오늘밤 너희는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강하게 부인했다.『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습니다』이 말은 자기의 의지에 불과하다. 회개하지 않으면 의지와 확신은 넘어지고 만다.
구원의 확신은 자기로부터 났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분간되지 못하면 소경에 불과하다. 자기 확신과 주님이 주시는 믿음은 다르다. 주님이 주시는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는 자 외에는 오지 않는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주께 돌이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회개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다. 자기에서 주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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