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요한복음 5장 44절)『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사람들에게 영광을 구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자랑한다면,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긴 설교(14-16장)를 들었다.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께 말했다. 요한복음 16장 30절에서『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님이 31-32절에서 대답하시기를『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믿느냐?』 라는 말은『너희가 나를 믿는다고?』라는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헬라어 본문에서『이제는』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지금』이라는 뜻이다.『지금 믿는다고?』이다.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를 믿느냐』라는 말이다. 오늘날 지적으로 성경을 알고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유대인의 사회에서 출회를 당할까봐 감히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만이 참 믿음이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지적인 동의일 뿐이다. 연합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예수 안에 있어야만 하나가 된다. 나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옛뱀에 물린 자다.
예수님은『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13장 37-38절에서 베드로가 말했다.『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14장 1절에서『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아무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이 말씀은 성령이 임한 다음의 이야기가 된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은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다 버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는 믿음이 될 수 없다. 거듭난다는 것은 이전의 것을 버리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군중이나 제자들이나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들이 거듭나는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오직 거듭나는 믿음은 못박히신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전 것을 예수와 함께 못박는 것이다. 장사되는 과정이 없이는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의 뜻은 모든 사람이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뱀에 물렸으므로 놋뱀을 바라보아야만 살 수 있다. 놋뱀처럼 죽은 자를 바라보는 것은 싫다는 뜻이다. 죽은 예수가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가 좋은 것이다. 니고데모에게서 부터 베드로에게 이르기까지 모두가 같은 상황이다. 우리도 명 설교를 하시는 예수를 찾아올 수 있지만, 거듭나지 않으므로 장대에 매달려 죽은 예수에게로는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위하여 사는 자가 참 신자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자는 참 신앙인이 아니다. 회개하여 허물과 죄로 죽은 자만 이것을 깨닫는다. 내 속에 하나님께 대하여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 십자가 앞에 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결국 십자가 앞에서 다 예수를 버리게 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지 않는다면 베드로처럼, 니고데모처럼 예수를 버리게 된다. 그래서 전적 타락한 존재인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만 회개할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항상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반역의 마음이다. 육체가 반응하면 모두가 하나님께 반역하게 된다. 마치 가나안 땅 앞에서 열 정탐꾼과 같이 되는 것이다. 육체가 반응하면 육체가 습득한 모든 것에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게 된다. 육체가 반응하지 않게 하는 것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를 동시에 신뢰할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릴것이다. 못박히신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와 연합되는 자 만이 회개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용어는 단지 성경이야기일 뿐으로 생각한다. 노아시대 물 심판처럼 과거의 어느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옛날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 문이 닫히면 끝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지말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경험 속에서 묵살시키는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25년간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경험 자기 판단을 의지하는 자를 혼적인 존재라고 한다. 혼적인 존재는 이 세상의 도덕과 법을 잘 지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자다.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영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이 부활한 자만 영적인 존재가 된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이다.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으면 예수 안에 있지 않게 된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밖에서 바라보는 자는 자기 부인의 회개없이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것이다.『저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신 분이지』라고 믿는 것이다. 예수 안에 들어가는 자는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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