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29-39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셨다.그리고 장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핍박할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의 결국은 심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차례 회개하여 돌이킬 것을 말씀하셨으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뱀을 계시록에서 사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뱀이 왜 사단인가? 뱀은 뱀이지 사단인가? 사단이라는 것은 대적자의 생각을 받아서 대적자의 생각과 대적자의 말과 뜻을 옮기는 자가 똑같이 사단이 되는 것이다. 사단이 뱀에게 자기의 말과 생각을 다 주었다. 그러니까 뱀이 하와에게 가서 사단이 준 생각과 준 말을 다 그대로 읊은 것이다. 그래서, 뱀이 사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 논리를 어디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면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 제자들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라 하기도 하고, 엘리야 라고도 합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네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이것을 알게하신 이는 하나님께서 알게하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자 마자 예수님께서『내가 곧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과 관원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되리라』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 때 베드로가『주여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못하리이다』라고 말을 했다. 절대 그리하지 마옵소서 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사단인가? 베드로는 사단이 아니다. 그런데 베드로 안에서 사단이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말을 주어서 베드로가 그 말을 하게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베드로에게『사단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최초의 대적자 사단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무엇인가? 대적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사람들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사단에게 적용하면 안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단아 뒤로 물러가라 라고 했는데, 베드로가 어떻게 사단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잘못 말씀한 것이 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뒤에서 생각을 주고 그 생각을 말하게 한 사단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회개하라』는 말을『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일을 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좋지않은 일을 했을 때,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들이 보기에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을 하게되면 교회에 와서 그 행위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회개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회개하라』의 의미를『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한다면 성경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교회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죄를 회개한다』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많은 오늘날 교회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가 크게『다르지 않다』라고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표상이요, 모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곧 세상 사람들의 죄요,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죄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말이다. 창세기에서 죄는 하나님이『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인간이 먹은 것이 죄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사단을 상징하며, 사단을 쫒아간 것이 죄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말은 금령이다. 금령은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은『죄를 행하지 말라』는 것인데, 위의 금령 중에서『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곧 죄라는 말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하나님없이 스스로 어떤 것이 선한 것이고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 알게되어, 악한 것은 행하지 않고 선한 것을 행하겠다』라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죄는『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과 동일하다. 율법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에게 열심히 행해서 의를 이루어 보라고 주신 법이다.『의를 이루어 보라는 것』은 스스로 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 속에서『하나님의 구원의 생명을 발견하라』는 말씀이다. 

그 생명을 발견하는 것은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완벽히 지키는 것이 의롭게 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그것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없이 스스로 율법을 지키거나 그 열매를 먹은 결과로서, 하나님없이 선악을 판단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것은『스스로 선악을 판단한다고 말해도 악한 것이라』는 말이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하나님 안에서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율법에 비추어서 선을 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0장 3절『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기도생활을 여러 번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의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정죄받는 사람들은 예수께 나왔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잡아드릴 계획만 하고 있었다. 율법에는 흠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저자는 죽어야 한다』고 외친 것이다. 이게 자기의 의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가 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경을 암송하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를 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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