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로마서 9장 19-26절)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하는 죄인들을 구속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해 주셨다. 고린도후서 5장 18-20절에서『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성도 또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고 하신 말씀이 적용되는 것이다. 죄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는『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양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고 직접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고, 죽기까지 하셨다는 말씀인데, 이사야 53장65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따라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이요,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 말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하는 직책을 맡은 자들이 사신이다. 하나님의 전권대사라는 의미다.
마태복음 13장 52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회개하는 죄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은 그 죄인들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인정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세상죄를 덮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죄인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서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회개하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날마다 회개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를 범하는지를 살펴보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육의 시각으로, 하나님은 영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놀라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연약함을 이미 잘 알고 계신다. 다만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회개한 죄인들이 해야하는 일들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면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인간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들은 먼저,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인식하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나 돌이켜 자유함을 만끽해야만 한다. 그래서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죄를 육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의 사랑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죄의 해결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죄의 핵심이 세상죄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고자 한 것이 핵심이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영이 죽어있으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천국의 비밀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들이나,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려 했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이나 모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지혜를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지혜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갇힌 존재들은 죽는 날까지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를 찾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에서『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세상은 인자(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밀을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비밀을 알려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이 천국의 비밀을 말해주어도, 교회 사람들은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에서 일어난 일로 생각하고,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는 선한 자가 되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믿지도 않으면서 돌아갈 곳은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창세전의 천국의 비밀을 알려줄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예수님은『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볼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거의 없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아버지의 아들들이였으므로,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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