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로마서 9장 15-33절)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모세를 세웠지만 바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치도록 허락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갇혀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돌아가야만 할 곳이 하나님 나라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임을 보여주듯이 세상 사람들 또한 이 세상이 고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본향임을 말씀해주신다. 이 구원을 위해서 바로를 세웠듯이, 사탄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를 강팍하게 하듯이 사탄을 강팍하게 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자신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 처음에는『자신이 애굽의 왕이 되어 큰 힘을 가지게 되므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생각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메시야가 우리의 왕이 되리라』라고 생각해 왔다. 당시에도 예수님이 큰 기적과 권능을 행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이 분이 바로 메시야』라고 생각하고, 로마에서 해방할 수 있는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다 뿔뿔히 흩어졌다. 에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지말고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제자들은『이 때가 예루살렘의 회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과는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제사와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받지 않았다고 전한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도 하고 큰 권능도 행했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너를 모른다』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오늘날 교회는 많아지고 교인들의 수도 많아지고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시면 정말 곤란하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으로 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애굽은 세상(죄)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세상(죄)으로 부터 건져내는 것이다. 즉 사탄의 권세로 부터 이끌어 내는 것이다.
사도행전 26장 17-18절을 통해서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가 왜 예수를 증거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라고 하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낸 것 처럼, 신명기에서 말하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신 예수님이 모든 백성들을 사탄의 권세로 부터 이끌어 내시려는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단의 권세로 부터 하나님의 권세로 소속이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나 예수님을 통하여『왜 사단의 권세로 부터 이끌어 내시려고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하나님의 백성 삼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가나안)로 가야한다. 애굽은 어두움이요 사탄의 권세요, 세상인 죄의 상징이다. 그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애굽을 동경하는 것이요, 죄를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없는 자이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라고 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도『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그런데 오늘날 기복신앙은 하나님 나라도 좋고, 예수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가르친다. 세상으로 부터 나와야 하는데, 잘못 가르치고 있다.
애굽이라든가 세상이라는 말은 나를 중심으로 외적인 것을 말하지만 내 속의 내적인 말을 한다면 바로 옛사람이다. 내 속에 옛사람이 있다.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악한 마귀로 부터 온 것이다. 야고보서 3장 14-15절에서는『귀신의 것』이라고 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도『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리고』이 세상으로 부터 나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건져낸 구별된 무리』를 말한다. 즉 세상으로 부터 건져낸 무리들을 말하는데, 많은 교회에서『예수 잘 믿으면, 세상으로 부터도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세상의 축복은 사탄이 주는 것이다. 세상으로 부터 나오는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싸움"은 육신에 따라 싸우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에 있다. 고린도후서 10장 3-6절에서『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성도가 사탄에게 대적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스스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0-13절에서『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으로서 대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그 말씀의 공로를 힙입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에베소서 6장 13-17절에서『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거듭난 자에게는, 이세상에서는 매순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영적 전쟁터에 놓이게 된다. 우리에게 평안이 아닌 칼을 주려고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안일하게 흘려보낸 삶의 자리들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통해 영적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싸움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패하지 않으실 것이며, 최후 승리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검을 들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전쟁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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