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14-21절)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기간 중 약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세운 교회였으며 당시 로마제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서 거대한 상업도시였기에 인구도 많았고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내포한 교회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내제된 수 많은 문제들에 대해 성경적인 가르침을 전달하면서 편지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편지를 쓰는 목적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부각시킴으로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함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교회를 떠나온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말씀이 생각나게 하려고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대언자였다. 사도 바울이 없는 그 자리를 디모데가 대신하고 있다. 디모데를 보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영적으로 늘 깨어있기를 기대하며 디모데를 보냈으나,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사도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기에 스스로 교만해 진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임한 분란은 행함 없는 말 때문에 일어났다.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게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선포했다. 요한복음 13장 8-10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부활시킨 것 같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는 로마서 6장 7절에서처럼『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결국 죽은 자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좁은 길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제는 육적인 형제 뿐만 아니라 영적인 형제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을 구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제가 원수가 될지라도, 이 세상에 잃어버린 어린양(죽어 있는 영)을 구하기 위해 작은 예수로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4-15절에서『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이유는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어주게 하기 위하여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13장 16-17절에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발을 씻겨주신 이유를 모르면 복이 안되는 것이다. 복은 구원을 말한다. 발을 씻겨주는 것이 예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여기서『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는 말의 의미는 나와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발을 씻는 것은 죄를 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먼저 시범을 보인 것은 제자들이 서로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다 가져가셨다. 인간들이 하나님께 지은 모든 죄를 다 가져가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인간들에게 짓는 죄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에게 시범을 보인 것 처럼 인간들끼리 짓는 죄를 서로 덮어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덮어주신 것처럼, 인간들 상호간에 지은 죄를 덮어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의 빚진 자의 예화를 통하여 왕이 빚을 모두 탕감해주셨는데, 빚을 탕감받은 자가 백데나리온을 갚지 못한 자에게 악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주신 것을 무효화해 버렸다.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줄 때, 즉 제자들 상호간에 서로 지은 죄들이 덮혀질 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은 서로 죄를 덮어줄 때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죄를 덮허줄 수 있겠는가?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전하게 된다. 즉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못한 자가 되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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