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고린도전서 5장 6-13절)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사도바울은 교회 교인들에게 성적타락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음행과 탐욕과 우상 숭배하는 자와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고 밖으로 내 쫒으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육체적 타락을 나타낸 것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영적인 타락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는 모든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성적타락 등 심각한 도덕적 탈선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린도 교인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듯하다. 바울은 일찍이 이 사태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 음행한 자를 내쫒으라.』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교회 공동체의 거룩성과 순수성을 위해서라도 묵은 누룩은 내버려야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 음행한 자를 내쫒으라는 것이 바울의 말이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권면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음행한 자를 내쫒기는커녕 교만스러운 당당함과 오만한 허풍만 가득했을 뿐이다. 음행한 자가 힘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른 소리 했다가는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못된 작태를 분명히 알면서도 그 힘에 붙어 이익을 탐하는 고린도 교인들이 더 흉한 것이다.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많은 교회에서는『육체가 죽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이 성경 귀절을 근거로 사도요한이 요한1서에서 말한『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육체를 사탄에게 내어주는 육체의 죽음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다. 그 예로 가롯유다와 같은 경우, 그리고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반은 숨기고 반만 내다가, 성령의 치심을 받고 현장에서 죽는 것들을 떠올리면서『육체의 죽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1서의 성경은 영생에 대한 말씀이다. 요한1서 5장 13절에서 말하고 있다.『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하려 함이라』성경에서 말하는『사망에 이르는 죄』는 육체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영생과 관련된 죄』라는 것이다.『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말한다. 만일 육체의 죽음이라고 한다면 죄값인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말하는 죄값의 사망은『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고,『영이 영생에서 멀어진 것이 사망』이다.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자를 위해서는『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요한1서 5장 16절에서『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왜냐하면 영생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자를 위해서『기도하라』고 했다. 사망은 하나님을 떠난 영을 말하며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마태복음에서 말하는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다. 예수님이 이런 자를 그 날에『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자들이 사망에 이르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의 말이 나오는데, 미련한 다섯처녀가 사망에 해당하는 사망에 해당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좌우에 강도가 있었다. 누가복음에서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해서『너 자신을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해보라』라고 했는데, 예수를 메시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한편의 강도는『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저를 기억하여 주소서』라고 했으며, 예수님이『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위의 예를 통해서 구원 못받은 사람들은『예수를 믿는다』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구약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 두 부류이다. 한 부류는 아예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다. 대부분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물론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도 포함될 것이다. 

한 부류는 예수를 믿는데, 예수님이『모른다』라고 말한 경우이다. 그 경우는『사람들 앞에서 나(예수님)를 부인하면 모른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병도 고치고 큰 권능도 행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모른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닌데, 예수님이 보시기에 부인한 것이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인정하는척 하고, 속으로는 부인한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복음이시다. 그런데 율법은 인간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 보려는 것으로 결국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말씀이며,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율법을 믿고 지키려고 하는 것은 오신 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신약(새로운 약속)이 성취되었는데, 구약(옛날 약속)에 계속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므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것은 오신 예수를 믿지 않는 그 말이다. 즉 율법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믿는 그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율법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본다. 십일조, 성전건축, 율법에 비추어 죄를 짓는지 살펴보고 날마다 회개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 다수의 율법적 요소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여전히 지키는 것은『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3절에서『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이런 자들을『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불법은 율법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 예수에게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한 경우, 율법에 매여있지만 결국 율법도 지키지 못하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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