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35-44절)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린도교회 구성원 중에 일부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부활의 증인들 중의 일부가 살아 있고, 그 증인들이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부정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주장이 교회 안에 퍼지게 되면 교회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부활문제를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사도바울에게 부활에 대해서 질문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나심으로써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은 이후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믿는 신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다같이 부활의 영광의 몸으로, 함께 재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부활이란 육체로부터 영혼이 빠져나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으로 이동하여, 일하는 수고도 하지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부활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부활에 대한 이런 이해는 당시 유행하던 헬라의 영혼불멸사상과 유사하다. 육체를 천히 여기고 영만이 우수하다고 여겨 죽음을 육체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으로 보는 이해다. 사도 바울이 이해한 부활은 신령한 몸을 입는 것이다. 이전의 육체는 홀연히 사라지고, 신령한 몸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더 이상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좀더 세밀하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대조하고 있다.
첫째, 부활의 몸은 썩을 것에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형된 몸이다.
인간의 몸은 모두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실은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죽음이 없는 영생의 몸이다. 둘째, 부활의 몸은 욕된 것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변형된 몸이다. 인간의 몸은 죄의 유혹과 세속에 물들어 있어서 탐욕이 들어 있다. 부활의 몸은 이처럼 죄의 속박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하게 된 몸이다.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반영하는 몸이다. 셋째, 부활의 몸은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변형된 몸이다.
첫 창조의 영향 하에 있는 인간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아래에 놓여 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그 어떤 외부 한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부활의 몸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낼 수 있을만큼 강한 몸이다. 마지막으로, 부활의 몸은 육의 몸에서 영의 몸으로 변형된 몸이다. 여기서 육의 몸이란 옛사람(탐욕)에 의해 오염된 몸을 말한다. 영의 몸이란 성령의 능력에 의해 하늘로부터 받은 몸을 말한다.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된다.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남이 부활이다. 이게 새 창조다.
인간에게는 영이 있다. 인간이 죽으면 육체와 영으로 분리된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전도서 12장 7절에서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라고 했다. 뭘 기억하라는 것인가?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영이 왜 육체 속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였다. 천사는 하나님을 보좌하는 존재이다. 천사는 영의 옷을 입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에서 영이 『의로운 옷』을 입으면 천사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장 중의 한 명이 그 옷을 벗고 하나님 나라를 떠나 자기왕국을 만들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사단이다. 그리고 사단은 많은 천사들을 유혹해서 천사의 옷을 벗고 자신을 따라가도록 유혹했다. 결국 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서 『의로운 옷』을 벗어버린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땅으로 쫒아버렸다.
부활 후에는 누가복음 20장 35-36절에서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라고 했다. 마태복음 22장 30절에서도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라고 했다.
감옥이 바로 『영이 들어간 흙』인 육체이다. 유다서 1장 6절에는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라고 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도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 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라고 했다. 어두운 구덩이가 바로 육체 속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을 보시니 모든 인간들이 이 마귀가 심어놓은 마음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 라고 했다. 창세기 6장 5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들이 악한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인간들이 만든 돌이나 나무나 어떤 형상을 보고 절하며 하나님이라고 숭배하는 것과,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신이 되어보겠다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마귀가 심어놓은 『옛사람』이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사단이 육체 속에 심어놓은 『자기』라고 생각하는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으면, 『세상에서 옛사람이 저질러 온 모든 죄를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대속한 것으로 여겨서 없애주고, 다시 하나님 나라의 천사의 옷을 입혀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을 때, 물에 들어가는 의미는 바로 사단이 심어놓은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장차 『의의 옷』인 천사의 옷을 입을 것을 나타낸다. 이 천사의 옷을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사도바울은 표현했다.
인간은 반드시 죽게되어 있다. 만일 육체가 죽어서 영이 부활할 때 천사의 옷을 입지 못한다면 둘째 사망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부활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라고 했다.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은 육체를 바라보는 것이요,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마음이 바로 옛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이 심어놓은 마음이며, 이 마음을 부인해야 진짜의 영의 마음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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