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19-26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자유는 멍에로부터 자유다. 멍에는 종의 멍에인데, 바로 사탄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이다. 왜 인간들이 사탄의 지배하에 있게 된 것인가? 교회 사람들은 대부분 에덴동산을 떠 올린다. 에덴동산에서 지은 원죄로 인하여 사탄의 종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죄는 두가지다. 하늘의 원죄와 땅의 원죄다.
에덴동산의 원죄는 이 세상의 원죄이지만, 하늘의 원죄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사탄의 미혹을 따라 갔으므로, 하나님께서 영들을 이 세상의 흙 속에 집어 넣으므로서 사탄의 종들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계획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시어 갇힌 영들을 구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들은 자유함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그리스도로 인해서 율법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이웃의 죽어있는 영들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바로 영을 살리는 일이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성도들의 영을 살리신 것 같이, 우리도 이웃의 영을 살리려 한다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네 자신 같이 하라』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동일하게 전하라는 것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영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의 몸을 가지고 있는 자는 요한1서 5장 18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성도는 두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영의 몸과 육의 몸이다. 그런데, 육의 몸은 죽어 있고, 영의 몸이 부활한 것이다. 육의 몸이 육체의 소욕이고, 영의 몸이 성령의 마음이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으로 거듭난 자는 현실적으로 육체가 살아있지만, 육체의 소욕이 죽어 있는 것이다. 육체는 다만 껍질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금지할 법은 율법을 말한다. 율법은 성령에 다가가지 못한다. 성령이 영의 몸에 들어가면, 율법을 내보내기 때문이다. 반면에『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대적하여 일어나는 것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자들이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우상숭배하는 자, 주술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다시 대적하는 원수맺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교회 안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이단을 만들어내고, 술취한 것같이 횡설수설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또 율법적으로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야만 한다거나, 교회를 성전이라고 하거나, 구약의 절기를 지키거나 새롭게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거나 하는 모든 일들이 술취한 자, 방탕한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성령으로 인도받는 자들은 율법으로 인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거나 지킬 필요가 없다거나 하여 서로 다투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다툼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율법과 상관이 없는 자인데, 율법으로 다투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는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뱓는 자들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해 죽은 자들이다.
죽은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은 것이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도요한이『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라고 했다. 왜냐하면『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없다』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만유』라는 뜻도 있지만,『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세가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이 모든 것들은 세상이 주는 것이지, 하나님께로 좇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세상은 사단의 것이 됨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왜 이런 말을 하겠는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기간 동안만 사단에게 세상을 넘겨준 것이다. 이 세상은 사단이 관리하고 있으며, 『사단이 주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는 말이다.
육신의 정욕은 육체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안목의 정욕은 눈으로 보아서 좋은 것들,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소유하고 싶어서 만족을 얻게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 주는 모든 것을 받고『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말한다면 곤란하다. 사도요한이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조차, 대부분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며, 대부분 자기와 관련된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셨다. 누가복음에는『염려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구하지 말라』라고 하셨다. 야고보는『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를 하라』고 했으며, 사도바울도『항상 기도하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물질세계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할 것』을 말씀하셨다.
물질은 인간의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이지만, 기도와 간구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누가복음에 나오는『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간절히 끝없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는『사단에 속았던 원한을 탄원하고, 성령을 간구하라』는 말씀이지만, 물질을 얻는데 이 말씀을 적용해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이 이어서『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는가』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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