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
(갈라디아서 6장 9-13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선을 행하는 일은 율법을 벗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가 생각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육체를 자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율법주의자들은 완전하게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지도 못하면서, 할례를 마치 의를 얻는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말이다.
로마서 3장 19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이게 복음이다. 이게 모든 사람의 영적 실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육체와 육으로 비롯된 생각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말씀해주시고『놋뱀을 매달았으니 그 놋뱀을 쳐다본즉 살리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사랑 앞에 진리를 생략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먼저다. 진리의 사랑이다. 진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광야에서는 애굽을 사랑한다. 애굽을 사랑하는 자가 바로 옛사람이다. 옛사람은 내가 주인이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가나안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다. 그러나 열정탐꾼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약속을 잊어버렸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세상의 어떤 상황이 나타나면『저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죽는다』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매일 매일 성경을 들어면서도 세상에 반응하고 세상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열정탐꾼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회개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세상에 반응하면 그 고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개는 말의 고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주여 내가 평생 등불을 켰나이다』라고 말해도 주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많은 교회는 주님이 주신 것이 모자라서 세상 등불로 켜진 곳이 많을 것이다.
롯의 처를 비유한 것은『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어긴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내가 죽어야 하는 회개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전적타락의 모습이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롯의 처』처럼 될 것이다. 구원은 요단강을 건너 예수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서『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여기에서『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은 오직『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옛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6장 15절의 말씀과 같은 말씀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은 거듭난 자를 말한다.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백세에 아브라함이 자기 안에 없는 생명을 받는 것이다. 이삭을 말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스스로 신약시대의 교회라고 하면서 구약시대를 살고 있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구원받았다고 한다. 율법에 갇혀있으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 말한다. 회개하여 믿음이 오기 전에는 다 갇혀있는 존재다. 회개해야 거듭나고, 거듭나야만 생명책에 기록된다. 거듭나는 것이 바로 성화다. 세상에서 열심히 잘 해보려고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죽는 것이요,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이 성화요 거듭나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다 소경이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8장 4절에서 말하는 것이 요구된다.『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여기서 『율법의 요구』는 헬라어『디카이오마(명사)』이다. 죄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옳은 행실』의 단어와 같다. 예수 안에 있어야만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들은『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이제 율법을 안 지켜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율법이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여전히 계명을 어기는지 살피면서 살아가는 자는 율법에서 벗어난 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에 대해서 육신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사탄의 자식들이며, 사탄 왕국 백성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사탄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다시 사탄의 백성이 되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율법을 완성하여, 통과하여 하나님 백성이 되었는데, 다시 율법의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믿는 구약의 율법 속에 있는 자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모든 세상죄에 대해서 단번에 사하시고, 로마서 8장 1절에서 결코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인지 한번 돌이켜 볼 일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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