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장 1-2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다음, 그들의 육은 살아있었지만 영으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들을 수 있었지만 에덴동산 숲에서 숨어 있었다. 교회의 예배나 의식은 에덴동산의 숲이 될 수 있다. 이런 예배나 의식 속에서 숨어서 지내다가 사회에 나가서 육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영으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들이 될 것이다.
교회의 예배나 의식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구약시대는 성소에 올 때마다 짐승을 가져와서 피를 받아야 했다. 그게 예배였다. 피흘림이 없이는 예배가 아니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하심을 얻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갈 수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죽음 때문이다. 그래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 허물과 죄로 죽어있던 자들이다. 영이 죽었다는 말이다. 예배를 드렸다고 영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허물과 죄에서 허물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말하고 죄(sin)는 원죄를 의미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말은『하나님이 주신 영』이 죽어 에베소서 1장 2절의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회개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은 이런 상태라는 것이다. 교회를 다녀도 세상 풍속을 쫒는 사람들이 있다면 에베소서 1장 2절의 상태가 된다.
출애굽했을 때 홍해바다가 갈라졌는데, 그 때는 바로왕의 군대로 부터 육체적인 구원을 얻게 된다. 소고치며 기뻐서 뛰놀았다. 그런데 광야를 나왔는데 길이 험하다고 삼일 만에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 다음부터 40년간 백성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모두 죄였다. 그렇지만 매일 매일 하늘로부터 주어진 맛나를 먹어 그들의 육체가 살았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면서 매일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매일 그들은 죄를 지었다. 어떤 때는 돌을 들어 모세를 죽이려 했다.
1년이 지나 유월절(애굽을 나올 때를 기념하라고 한)을 한 번 지낸 다음, 주님이『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을 정탐하라』고 하셨는데, 열 정탐꾼이 말하기를 들어가면 죽는다고 말했다.
이 거짓말을 듣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애굽을 나온 모든 사람들이 통곡했다고 한다.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열 정탐꾼의 말을 믿었다. 마찬가지로 로마서 1-3장은 모든 사람의 죄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잘 모른다. 스스로를 살펴보지 않으면 주님께 대한 악한 모습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믿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믿음을 가르쳤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옛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옛사람의 주인은 마귀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차라리 애굽이 나앗도다』라고 했다.
그들은 애굽에서『파 마늘 부추 오이 참외를 먹었도다』 라고 말했다. 몸은 애굽을 나왔지만 그들의 혼 속에 애굽이 있는 것이다. 광야에서 혼이 죽기 전에는 영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 풍속을 쫒는 것이다. 애굽을 여전히 동경하는 것이다. 애굽은 세상이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준이 세상이 되고 만다.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이 한다면, 평생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이런 혼적인 생각이 죽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주님은 광야에서 죽으라고 애굽으로 부터 끄집어 낸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끄짐어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면 『아낙자손 때문에 죽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 말하자면 사단이다. 사단은 인간보다 지혜가 뛰어나다. 사단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흰옷을 입을 수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삼년 동안 가르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다. 마치 애굽을 나올 때 히브리 백성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누구든지 사람들에게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너희를 부인하리라』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가버렸다. 마치 가나안 땅 앞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모두 통곡하며 울었던 것과 같은 모습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이 시인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시인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할지니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예언하며 귀신을 쫒아내며 능력을 행하였나이다 라고 말하리니 그 날에 내가 말하기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 내가 나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말할 거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낫고 능력이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믿으면 주님이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모른다』라고 하신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풍속을 쫒고 있고, 공중의 권세를 따르고 있으면 허물과 죄로 영이 죽어 있는 것이다. 성경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고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영이 죽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리새인과 니고데모인 것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왔다. 주님을 찾아온 것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행하는 기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입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찾아왔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사람이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오늘날도 이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스스로 되지 못하고 되었다고 믿는 자는 자기를 속이는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물과 성령을 동격이라고 속이는 자들의 말』에 현혹되고 있다.『물로 거듭나는 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말이다』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육적인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물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에서 혼이 죽는 것이다. 물 밖으로 나올 때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죽었던 영이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혼이 죽고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어야만 영이 살아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혼이)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영이 살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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