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2장 8-10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8-9절을 10절과 따로 읽으면 안된다. 8-10절을 함께 읽어야 한다.『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이 말씀은 부모로 물려받은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선한 일을 위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남은 구약성경에서 출애굽 사건과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된다. 가나안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애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광야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원을 받았지만 가끔 넘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잘 훈련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아무리 애굽을 나오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았다 할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세상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을 찾게된다. 마치 바로왕의 억압 속에서 부르짖은 히브리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찾게된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는 믿음이 있었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으며, 매일 구름기둥과 불기등으로 따르는 것처럼 예배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했다고 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다.
열두지파의 대표는 지파별로 약 오만명 중에 가장 믿음이 좋은 자 한명을 택하여 선발된 자들이었다. 그들이 가나안을 보고 왔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열명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하면서,『그곳에 들어가면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이 살고있다』고 말했다.『성벽도 높고 철병거도 있으며,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40일간 정탐하고 왔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혀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는 것이 판명된 것이다.
갈렙은『그 땅은 주님이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들어가서 가나안을 취하자』라고 말했는데, 성경은『여호수아와 갈렙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고 말한다. 이 믿음만이 천국 가는 믿음이다. 그러나 아낙자손은 인간의 힘으로는 이기지 못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이기게 된다.
민수기 14장 10절에서『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온 회중이 열정탐꾼의 말을 믿었으므로 모세와 여호수아를 돌로 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11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이 입으로『예수의 피로 내 모든 죄가 씻어진 것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굽을 나왔다는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을 동경한 것과 마찬가지다. 육체적으로는 출애굽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애굽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어린양의 피를 칠했지만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나 듣는 자는 모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구덩이에 빠지는 격이다.
세상에 살면서 핍박과 환란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풀 같은 것들은 불에 타고, 금과 은과 보석은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출애굽후 1년이 지나서의 이야기다. 여전히 히브리 백성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 앞에서는 그들의 믿음은 풀과 지푸라기와 나무임이 드러났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와 같다. 그 은혜라는 말은 그 분의 은혜이시다.
에베소서 2장 5절에서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말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은혜가 없이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은혜가 바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다. 거듭난 자의 믿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씻음은 없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에서 죽는 것은 노아의 홍수 때처럼 세례받는 자도 죽었음을 믿는 행위다.
인간 속에 육체적인 생명이 아닌 하늘로부터 받는 생명은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거듭난 자의 생명, 이것만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아낙자손을 멸하듯이 철병거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믿음이 된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가나안 앞에서 불안해 지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주인인 사람은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세례는 방주와 같은 것이다. 방주에 들어가는 믿음이 아니라 방주 밖에서 다 죽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방주 밖에서 죽은 자들과 같이 죽은 것을 선서하는 의식이다.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과 같다. 베드로처럼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니라, 나도 십자가에서 도망가는 존재,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을 선서하는 믿음이다.
이게 회개의 세례가 된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이런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가, 내가 예수와 함께 죽는 믿음인가?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