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1-2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바울은『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해주셨으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라고 말했다. 종의 멍에는 율법이다. 특히 할례가 대표적인 것으로 율법주의자들이 가만히 들어와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누룩과 같이 퍼뜨리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보면, 두 종류가 있는데,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자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께서『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지키는 자』를 보호하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술 취한 자의 소리다. 성경에도 없는 말들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도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성령이 없는 자가 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유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에 비추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율법주의자인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율법 특히 십계명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전히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해야만 한다고 말하므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십계명을 통해서 의인이 되고 싶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율법으로 다스리신다. 모든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은『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은 율법을 폐하였으므로 이 계명도 안지켜도 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기도 있다. 하나님이 이 계명들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되고, 죄를 깨닫게 되고, 그래서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므로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게된다. 율법에서 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 속에 성령의 법이 기록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다른 신을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즉 율법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율법이 그래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알지못하는 자가 된다.
십계명의 네번째 규정인『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라고 명하셨다』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은 율법을 폐하셨으므로,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의 주인이시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안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논쟁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안식년, 희년 모두가 다 안식의 개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은 안식의 의미도 모르면서, 그런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31장 33-34절에서『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옛언약(율법)을 폐하고, 새언약을 마음에 새긴다고 했다. 즉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모든 세상죄를 다 사했으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율법으로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오셔서, 모든 율법에 관계되는 것을 다 없애는 것이다. 율법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율법의 계명이 없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읽지 못하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씀 전체가 하시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율법 운운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자기들이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율법은 어떤 것이나 죄인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은혜를 받은 자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이유로 구원을 받는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내세우지 말라고 하신다. 자기라는 존재가 바로 자기의 의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다른 마음은 곧 율법적으로 신앙생활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당시에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할례를 다시 받는 행위를 하는 자를 지칭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8-19절에서『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므로 더 이상 율법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으며,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는데,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다시 율법에 세워 죽게하는 자들과 같은 이치가 된다. 율법을 다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마귀의 자식들이다.
오늘날 율법에 대해서 갖는 생각들은 세가지 부류로 분류될 수 있다. 전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철저히 더 지켜야한다, 율법이 폐기되었지만 도덕과 관계되는 법은 그래도 지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분류된다. 즉 율법으로는 의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런 도덕적 규정들을 잘 지켜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율법을 생각하면 죄가 떠오르고, 현실적인 죄의 문제에 벗어나지 못하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소멸시효가 있는 것이다. 율법이 전적으로 폐기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로 율법이 소멸되어진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대해서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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