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데살로니가전서 1장 1-10절)『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라고 했다.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여기에 나오는 택하심과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말하는 택하심은 같은 단어다. 디도서 1장 1-2절에서도 『택하신 자』라고 표현했다.『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성경에는 부르심과 택하심이 있다. 애굽을 나와서 홍해바다를 건넌 백성들은 부르심을 얻은 자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왕에게『내 백성으로 하여금 예배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호세아에서는『내 백성을 불러내었다』고 말한다. 출애굽기의 뜻은 『이름들』이지만 레위기는『불러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은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다. 교회를 헬라어로『에클레시야』라고 한다.『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주님은 우리에게『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드온 300 용사의 이야기를 보면, 기드온은 32,000명을 불러내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지금 너희가 이기면 너희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할까 하노라, 그래서 두려워하는 자는 돌아가라』고 했다.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22,000명이 돌아갔다. 돌아간 자는 주님과 함께 이기심을 버린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번에는 내가 물 마시는 자세를 보고 택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머리를 숙여서 마시지 않고 손으로 움켜서 마시는 자, 전쟁에 나가는 자세를 보고 택하신 것이다. 그래서 300명을 택하게 된다. 9,700명은 물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서 제외시킨 것이다. 택하신 자들 300명이 이기는 자들이다. 

성경은 이 순서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서『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이 이야기는 천국의 비유에서 나온 말씀이다. 천국은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요한계시록이다. 종들을 보내서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청했는데, 그들이 오기를 싫어했다. 22장 4절에서『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자기 아들을 결혼식의 제물로 잡은 것이다. 십자가에서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제물의 음식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지 않는 것이다. 

22장 5-6절에서『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이게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다. 22장 7절에서『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게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다. 어린양이 인봉을 뗄때마다 재앙이 이 땅에 일어난다. 요한계시록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주님이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22장 8-10절에서『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악한 자나 선한 자나 차별없이 다시 불렀다. 이게 은혜라고 한다. 마태복음 22장 11-13절에서는『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바깥 어두운 곳』에 대해서 두가지의 견해를 나타낸다. 지옥이라는것과 천국이지만 성 밖이라는 표현이다. 후자를 말하는 자는 예수믿기만 하면 일단 구원은 받지만, 예복을 입지 못했기 때문에, 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은 가지만 성 밖에 머문다고 말한다. 성밖은 지옥도 아니고, 성안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입장이다. 그들은 애굽을 나오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받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거짓된 교리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것이다. 예복을 입지 않으면 주님이 끄집어낸다. 라오디게아 교회에『차든지 뜨겁든지 아니하고 미지근하면 토하여 내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것이다.『불로 단련한 금을 사라, 흰옷을 사서 입으라 안약을 사서 발라보게 하라』고 하셨다. 회개는 값없이 그저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값없이 그저다. 우리가 할 것은 없다. 주님이 다 하신 것이다. 그것은 회개한 자, 택하신 자의 믿음이다. 그래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만 한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사건을 경험했다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모세로부터 세례요한까지)로 인하여 회개하는 것이다. 그 율법으로 인하여 회개하는 것이다. 율법은 모세로부터 세례요한까지다. 율법의 마침은 우리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택한 자의 믿음, 바로 거듭남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죽은 자만 인도한다. 

죽어서 인도받으면 3장 26-27절이 적용되어『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이 믿음은 죽는 자만이 갖는 믿음이다. 이 세례는 홍해바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요단강에서 일어난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광야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애굽에서 나오면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영접기도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말한다. 어린양의 피만 있으면 구원이라는 것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헀다. 모세오경의 그림자와 예수님의 말씀은 다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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