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디모데전서 1장 1-20절)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 . . . .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에게 보낸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을 통상적으로 목회서신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목회 현장에서 삶을 던져 목회하는 영적인 아들들에게 교우들과 더불어 바르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리적 권면과 실천적 권면을 서신에 담아 보냈던 것이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가장 늦게 쓴 서신서 중 하나로 약 62-63년경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예수의 명령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디모데를 다음과 같이 부른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사도바울은 헬라어 은혜와 히브리어 평강을 붙여서 독특한 인사를 했다. 주안에서 헬라인도 유대인도 모두 한 형제자매인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다른 서신서 와는 다르게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두 단어 사이에 긍휼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가장 먼저 쓰인 서신서로 알려진 갈라디아서 6장 16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마지막 인사에 보면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라고 했다. 

어쩌면 사도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워진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첫 서신에서부터 오랜 선교와 목회사역을 마무리하며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며 돌이켜 보니 자신이 얼마나 긍휼을 입은 존재인지를 고백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긍휼을 입은 존재임을 잊지 말고 사역에 임할 것을 영적 아비의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헛된 말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했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당시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목회하면서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영지주의자였다. 이들은 영적인 통찰력 즉 깨달음만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고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고 믿었기에 이들과 큰 마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디모데에게 헛된 말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했다. 이들은 유대교의 신화들과 끝없는 족보들을 늘어놓는 목적이 자기자랑에 있을 뿐 거룩한 삶, 믿음의 삶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도리어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쓸데없는 변론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라 권면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에베소서 1장 9-10절에서『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여기서 말하는 경륜은 창세 전에 구원의 계획이 이루어졌으며,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이나 하늘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지는 것이다. 

이어 사도바울은 정말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설명했다.『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사도바울이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들은 죄인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지만, 자신은 그리스도 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전에 비방자였고, 박해자였고 폭행자였다는 것이다.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일체 오래 참으심으로 자신을 긍휼로 입혀 주셔서 영생을 얻은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해 주셨다고 고백한다. 이를 통해 사도바울은 지금 자신이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며 돌이켜 보니 긍휼로 입혀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목회해 왔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 디모데야』라고 사도바울은 부르며 디모데를 몇가지를 부탁했다.『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먼저 디모데에게 말씀으로 시대를 해석하는 능력을 통해 헛된 말에 유혹당하지 말고 당당히 싸우라고 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대에 따라 적용되는 대상이 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지혜롭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질되어 왔다. 오늘날에는 회개하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 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회개없는 구원은 없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말로만 회개하고 죄악으로부터 돌이키지 않으면,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며 선한 양심과 믿음을 지킬 것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처럼 헛된 말과 믿음 없는 양심으로 사탄에 끌려가지 말라 권면한 것이다. 선한 양심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양심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베드로가 세례에 대해서 설명했다.『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세례(침례)를 받을 때 물에 잠기는 것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노아시대 살았더라면 죽은 자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선한 양심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한 양심을 하나님으로 부터 얻기 위해서는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