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장 4-13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분명하게 나뉘어졌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죽음의 절망가운데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신 생명의 주인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빛되신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한 사람을 선택하여 보내심으로 장차 오실 빛, 구원자에 대하여 선포하도록 하였다. 이 일을 맡은 요한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 즉, 자신은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성실히 맡겨진 일들을 감당해 나갔다. 

『빛이 아니고 빛에 대해 증언하러 온 자』자신을 소개하는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빛이 되어 주목받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창조주이시고,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다 이제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창조하신 그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 분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 이심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인간이 이제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해 주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할 때, 그리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인간은 나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에게 유익을 주는 것에 목표를 세우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세상의 중심에는 바로 내 자신이 있었고, 자기 중심의 굴레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러한 삶의 모습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삶이라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내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죄인인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강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참으로 연약하고, 초라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나의 힘으로는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닫고, 내가 아닌 외부의 도움으로 나의 연약함과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이 나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몸이 죽고, 다시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감히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지켜야 인간은 의롭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피를 뿌려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인됨을 깨닫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된다.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이라는 말은 his own이라는 말이다. his own을 이렇게 풀어서 해석한 말이다. 주님이 유대 땅,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셨다. 주님이 온 땅, 만민 중에서 택한 주님의 소유였다. 아브라함을 보내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하늘의 모형인 성막과 성전을 주시고 법궤를 주셨다. 자기의 소유인 자들이 영접지 아니하였다. 

이 이야기가 포도원의 비유다. 포도원의 주인이 종들을 보냈더니 소출을 주지 아니하고 종들을 때리고 죽여버렸다. 종들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이었다. 선지자들이 원하는 소출은 회개였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아들을 보냈는데, 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들마저 죽여버린 것이다. 회개는 주님이 없는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받아들일 자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니』라는 말은 선언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미혹에 빠져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말씀으로 감동을 주고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되면 예수를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와 그리스도를 죽여버렸다. 아들을 영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아들을 죽이면 이 땅이 우리 것이구나』라고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이게 성경의 선언이다. 예수가 주가 되지 못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 안에 예수를 주로 받아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회개하지도 않으면서『아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어보자』라고 예수를 구원의 방법으로 이용할 뿐이다. 이렇게 성경과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포도원을 빼앗고 싶은 자기우상인 탐욕 밖에 없는 것이다. 이 탐욕의 마음은 노아의 홍수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게 로마서 1-3장의 인간의 마음 상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는 것이다. 천국은 왕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준비한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왕이 백성들을 불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다 일치하여 사양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래서 종들을 다시 보냈다. 그런데 종들을 때리고 죽였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왕이 혼인잔치에 초대했는데 단 한명도 오지 않는 그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단 하나, 하나님 나라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 속에는 자기가 주인되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 왜냐하면 마귀가 아비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선해보이는 사람도 악해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으면, 그 안에 마귀가 주인이다. 

노아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서 선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의인은 없나니 단 한명도 없다고 선언했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전에는 회개한 자가 아니고 주를 찾는 자도 아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종교를 만들어서 성경에서 좋은 내용을 뽑아 사랑의 주님을 만들어서 믿고 사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왔는데,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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