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6장14-43절)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 . . . . (중략)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은 마침내 놀라운 표적을 경험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명기 18장에서 예고된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 믿고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정치적인 해방을 일으키고, 경제적으로 부흥시키며, 사회 정의를 구현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꿈을 성취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고, 자신들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셨다. 

파도를 다스리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그들의 요구를 뿌리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고, 배부르게 하고, 해방을 주시기가 싫어서도 아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수많은 표적을 보던 유대인들은 예수님 자신보다도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을 더 원했을 뿐이다. 그분을 왕 삼으면 살림살이가 더 나아질 것이라 믿었고, 고통과 고난도 사라질 것이라 믿었고, 그 어떤 병도 다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아니다. 이런 믿음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부와 번영을 확장시키고,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으려는 이교도들의 우상숭배적 태도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맹신에 불과할 뿐이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어두움은 여전히 제자들이 율법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나타내신다. 바람이 불어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율법을 벗어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을 나타내신다. 마태복음 14장 22-36절에서도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다. 베드로는 배를 나가 물 위로 걸었다. 배는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배의 시작은 노아의 방주다. 방주는 구원의 표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바다는 바로 율법을 나타낸다. 그래서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주린 배를 채운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수소문하여 가버나움까지 배를 타고 뒤좇아 왔다. 이들에게는 먹는 것이 심각하고 현실적인 문제여서 조심스럽게 예수님께 접근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속마음의 의도를 다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많은 이적을 베푸셨다.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병든 자를 낫게 하시며, 귀신을 내어 쫓았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주린 사람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광주리를 남기셨다. 또 풍랑과 바람을 잔잔케 하시며 물위를 걸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처한 형편과 상황을 불쌍히 여기셨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하셨다. 고통 속에 매여 있는 그들을 낫게 하고 자유롭게 해 주시고자 하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기적을 베푸셨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보면서 마치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이런 현실의 문제에 계속 매여서 영생하는 하늘의 양식을 찾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세상에 속한 썩어져 없어질 것들을 찾다가 주님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베푸신 궁극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죄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두려움과 염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오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그들이 표적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찾아 온 것임을 아셨다. 그들은 또 다시 표적과 기적을 바라고 한번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육신의 양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찾아왔다. 예수님은 양식의 문제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들의 육의 양식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리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도 그들이 땅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얻고자 한다면 결코 주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영생을 주시는 자시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위해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이 말씀에 무리들은 예수님께 다시 되묻는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내신 분으로,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영을 죄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믿는 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가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참 만나인 생명의 떡이므로 자신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나 육체는 썩어 땅에 묻힌다. 그러나 영은 구원을 얻어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믿어 영생하라는 것이다. 믿는 것이 영생을 얻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들을 믿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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