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 16장 1-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보혜사』라는 말은 요즘 사용하지 않는다. 보호하시고 은혜스러우며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파라』는 『곁에』라는 말이고 클레이토스는 곁에서 『말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이 땅에 부어져 있다. 진리의 영이 옆에 있다는 뜻이다.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말씀이다.
오늘날은 성령을 은사를 주시는 성령으로 잘못 생각한다. 성령은 사랑의 성령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인간은 육체는 부모로부터 받지만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육체 속의 옛사람은 뱀의 DNA가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의 몸은 하나님의 DNA가 있다. 옛사람이 변화되어 영의 몸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전 것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사탄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은 책망하신다. 갈라디아서 1장 9절에서 사도바울이『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저희(세상)가 나(예수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유대인들이 말하는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죄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세상죄를 다 짊어지고 가셨는데, 『예수 안』에 있으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 죄다.『예수 안』에 있어야만 한다. 예수와 함께 못박혀야만 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옛사람이 죽지 않은데, 날마다 죄의 고백을 반복하다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죽었다면,『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해야만 한다. 예수 믿기만 하면 세상죄를 다 사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죽어『예수 안』에 있어야만 죄를 사하심을 얻는다. 옛사람이 예수 안에서 죽었다고 믿지만, 여전히 죄에 대해서 고민하는 자들은 성령의 책망을 듣는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인데, 구약시대에 의는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님은 그게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세상죄를 다 가지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가셨는데, 이와 같은 것을 구약과 비교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동물을 죽인 피를 가지고 지성소까지 나아가야 했으며,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셨던 것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를 흘리시고,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마지막 역할을 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앉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도 그와 함께 앉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는 않지만『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의가 되는 것이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탄은 공중권세에서 땅으로 쫒겨 내려갔다. 계시록 12장 12절에서『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즉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주인이 바뀐 것이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이는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예수 안에 있는 거듭난 자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3장 14-15절은『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여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니고데모가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다. 그리고 3장 16절에서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한 것이다. 위로부터 난자, 거듭난 자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죄사함이 구원의 핵심이 아니라, 거듭나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죄사함은 거듭남의 결과다. 죄사함을 받아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자만 죄사함을 받는다. 거듭나는 것은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미혹되지 말아야만 한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잘 깨달아야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가나안 땅 앞에서 갈렙의 말을 믿지 않고 열정탐꾼의 말을 믿었다. 모두가 통곡했으며, 슬픔이 분노로 변해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이게 모든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노아의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의 말을 믿은 사람은 가족 7명 뿐이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모든 인간들이 생각하는 바가 악하다』고 했다. 홍수가 시작되어 밤낮으로 40일간 비가 왔다.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된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로마서 3장에서『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말했다. 성경은 죄 아래 가두었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함이다. 복음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기쁜 소식이다. 회개는 죄를 고백만 하고 또 죄를 짓는 자가 아니라, 죄의 탐욕을 버리고 죄를 떠나는 것이 회개다.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좋은 소식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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