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장 1-14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을 마무리 하면서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들과 성도들을 향한 권면을 한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여기서 장로는 오늘날의 직분으로서의 장로가 아니라 교회에서 기능적으로 지도력을 보이는 어른들을 뜻한다. 베드로는 자신이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자기가 다른 장로들과 동일하게 교회를 섬기는 자임을 말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장차 그 영광을 보게 될 자라고 소개함으로써 장로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고난으로 부름을 받은 자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또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양 무리인 성도들을 사랑하며 즐거이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충성스럽게 섬긴 장로들은 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그의 영광에 동참할 것이며, 없어지지 않을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겸손과 낮아짐을 장로들에게만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여기서 젊은이들은 연령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어려서 영적지도자들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장로들이 겸손한 태도로 다스려야 한다면, 젊은이들 역시 겸손히 따라야 한다. 베드로는『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종이 주인을 시중들기 위하여 앞치마를 두르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어서 잠언 3장34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겸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밝히는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반면에 겸손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교만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만을 믿어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기 우상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마치 전쟁터의 적군처럼 대적하고 파멸시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구약에서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구약 이스라엘의 다양한 상황가운데서도 여호와의 능하신 손으로 이끄신 것처럼 성도들도 삶의 다양한 상황 가운데서도 겸손하라고 권하면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결코 짧지 않는 능하신 손으로 그들을 높이시리라고 격려한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고난 가운데서도 겸손하며 신앙을 지킨 성도들은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하실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사탄은 평화의 시기에는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나 미혹하여 시험에 빠뜨리고, 박해와 핍박의 때에는 마치 사자의 모습으로 성도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근신하며 깨어있는 성도는 사탄을 대적하여 굳게 설 수 있다. 때때로 나만 이런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만난다는 영적 외로움이 성도를 약하게 만든다. 나만 그런 고난과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성도들도 역시 고난을 당하지만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서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핍박과 시련을 이기면 바로『이것이 천국으로 가는 믿음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기뻐할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서『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믿음에는 분명 시련이 있다. 그런데 그 시련이 금보다 귀하다고 했다. 따라서 값싼 구원은 없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버리셔야만 했다. 누가 구원을 값싼 것처럼 생각하는가? 인간은 그렇게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선하지 않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으실 만큼 타락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서『죽어서 돌아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들로 하여금 죽게 하셨는데, 하나님과 언약을 하겠다는 자들이『죽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죽겠다고 하고서는 말로만 죽는다. 육적 자아의 죽음은 엄청난 대가가 필요하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라는 말이다.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회개의 열매는 바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나니』가 되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탐욕의 원인인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이런 성도들을 모든 고난 가운데서 지키셔서 다시 서게 만드시고 결국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하나님만 찬양하게 만드신다.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하셔서 영광의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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